영화 '더 팬'의 한장면
스포츠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스포츠 그 자체보다 재미없다는 점이다. 9회말 역전 홈런처럼 아무리 박진감 넘치는 상황을 만들어도 그것은 실제의 경기에서 맛보는 우주가 뒤집어지는 듯한 ‘격정’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토니 스코트 감독의 ‘더 팬’도 그중 하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야구광이다. 심각한 내적 불안과 직선적 성격으로 너무 일찍 인생의 종착역에 도달한 중년의 사내. 로버트 드니로가 이 신경쇠약 직전의 야구광을 열연했다. 몸값 4000만 달러에 달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강타자를 향한 로버트 드니로의 광적인 사랑. 결국 전율스런 살인과 애증으로 얼룩진 파멸에 이르는 이 지독한 야구광은 스펙터클의 사회, 말 그대로 구경거리가 넘쳐나고 구경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제의로 자리잡은 이 시대를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스펙터클의 중심에 스타가 있고 그는 팬들이 동경과 애정으로 쌓아올린 인기와 돈이라는 권좌에 앉는다. 하지만 그것은 나날의 생생한 삶이 모조리 소거된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것. 스타와 팬의 우호적 관계란, 적어도 ‘더 팬’에 의하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다. 결국 치명적 사랑은 복수로 끝난다.
돈 심슨, 조엘 실버 등 헐리우드의 권력자들을 구슬려 ‘탑건’ ‘폭풍의 질주’ ‘크림슨 타이드’ 등 작품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흥행만큼은 확실히 보장된 작품을 줄곧 만들어온 토니 스코트 감독 작품. 야구 영화이면서 동시에 현대사회의 한 측면을 예리하게 관측할 수 있는 여백까지 제공한다. 스포츠 영웅의 탄생과 좌절, 재기와 영광이라는 뻔한 틀을 버리고 잠실구장 개막경기를 꽉 채운 3만 관중의 내면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열광적인 팬 로버트 드니로를 통해 인생의 궁극적 실패와 그 역설의 가치를 비참하게 보여준다.
정윤수(스포츠문화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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