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리스마키의 걸작 (위)와 졸작
핀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44)는 34세 때 벌써 베니스영화제에 회고전이 개최될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창백한 유머가 범벅이 된 톡특한 스타일로 한국의 영화팬들에겐 수수께끼 같은 감독으로 꼽힌다.
그의 영화 가운데 1989년 작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Leningrad Cowboys Go to America)는 영화 사상 가장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작품. 딱따구리 부리처럼 앞으로 돌출한 헤어스타일에 뾰족구두를 신은 주인공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로큰롤을 연주하는 모습은 썰렁한 유머의 극치다.
핀란드 촌구석의 8인조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는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미 대륙을 종단하면서 로큰롤, 컨츄리, 하드락 등 온갖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고 결국 멕시코에서 성공한다.
영화는 풍요의 땅 미국이 오히려 더 불모의 땅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이 영화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지만 감독 스스로는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 중 최악으로 꼽는다. 재미있는 것은 감독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잘만들어졌다고 꼽는 ‘성냥공장 소녀’(The Match Factory Girl)가 같은 해에 제작된 영화란 점.
이 ‘성냥공장 소녀’는 무성 영화적인 특징에 리얼리즘적 미학을 녹여 넣은 작품. 성냥공장에서 일한 돈으로 무능력하고 무정한 부모를 부양하는 가난한 여공 이리스는 화이트컬러 남자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뒤 냉혹한 세상을 향해 복수를 펼친다.
이 작품의 무성 영화적인 특징은 성냥공장의 작업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도입부 등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영화가 시작하고 20분이 지나서야 첫 대사가 등장할 정도. 아울러 영화 중간 중간의 애절한 음악은 건조한 화면과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지만 동시에 영화 중간중간 텐안먼(天安門)사태를 다룬 TV뉴스화면을 끊임없이 투사함으로써 사회주의에 대한 절망의 고통도 함께 그렸다.
희극과 비극,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이란 뚜렷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간결한 스토리, 감정표현을 최대한 억누른 영상, 그 분출구로서의 음악이라는 같은 패턴을 보여준다. 그 이면에는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할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과, 세상살이에 서툰 인물에 대한 연민의 정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아트큐브 광화문은 감독 자신이 각각 졸작과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이 두 영화를 21일부터 동시에 개봉한다. 02―2002―7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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