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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황영조의 풀코스 인터뷰]안양LG 골키퍼 신의손

입력 | 2001-04-09 18:38:00

최초의 한국인귀화 스포츠 스타인 신의손이 자택에서 황영조와 인터뷰 후 큰딸 올가, 아들 예프게니와 포즈를 취했다.


‘600112―120****’.

참 낯설었다. 구단으로부터 받아든 신상명세서. 벽안의 러시아인이 나와 똑같은 주민등록 번호를 갖고 있다니….

5일 늦은 저녁 무렵. 동아일보 체육부 배극인기자 사진부 김동주기자와 함께 구리시 교문동 우성아파트 신의손(41) 집으로 향하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

☞신의손 동영상 인터뷰

초인종을 누르자 그의 아내 올가(39)가 맞았다. 집은 여느 한국인 서민 아파트와 다름없이 소박했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가족 사진이 잔뜩 걸려 있고 싱크대 옆 냉장고에 러시아어로 된 메모가 빼곡히 붙어있는게 다르다면 다르달까.

조금 있으니 딸 올가(18)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이름뿐 아니라 얼굴도 엄마와 꼭 닮았다. 하지만 엄마보다 붙임성이 있었다. 아버지와 가족 이야기를 영어로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아빠는 언젠간 러시아에 돌아가고 싶데요. 러시아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 때문이래요.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동생 예프게니(16)와 나는 한국말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 사람이라고 느끼지도 않아요. 오히려 러시아 사촌들을 만나면 다른 나라 사람 같아요. 내가 이미 사고방식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한국식에 익숙해져서 그런가봐요. 공부하느라 늘 바빠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캐나다로 유학가 미생물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동생은 학교에서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데 누가 아빠 아들 아니랠까봐 골키퍼죠. 유럽 프로무대에서 뛰는게 꿈이래요.”

졸지에 통역이 된 배극인 기자의 설명으로 딸의 수다를 듣고 있는 사이 팀 회식을 마치고 신의손이 들어왔다.

배기자가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라며 영어로 내 소개를 하자 그는 또박 또박한 한국말로 “아,예예예. 잘 알아요”라며 활짝 웃었다.‘무뚝뚝한 사나이, 냉정한 승부사….’ 지레짐작했던 그의 이미지는 환하게 드러난 그의 치아와 함께 하얗게 지워졌다.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고 칭찬을 하자 “한국말 조금 문제 있어요.한국말 힘들어요.잉글리시 쪼끔 괜찮아요” 라며 어색하게 다시 웃었다.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배기자의 통역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국축구 너무 많이 뛰어요”▼

황영조:혹시 이름을 한자로 쓸 수 있습니까.

신의손:한글로는 쓸 수 있어요.(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두 차례 직접 써 보였다)

황:한국이 뭐가 그리 좋습니까.

신:나와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국은 좋은 점이 많아요. 일단 조용해요. 삶도 안정적이죠. 러시아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라요.

황:CD수집이 취미라는데 주로 어떤 음악을 즐겨 듣나요.

신:고교 때부터 록 스타일을 좋아했어요. 하드록은 아니고요. CD수집 한 지는 17년쯤 됐고 지금은 비틀즈 것부터 한 500장정도 갖고 있어요. 한국 것은 클래식만 몇 장 있어요. 한국 노래는 부를 줄 몰라요.

황:딸과 아들이 한국인과 결혼한다면 찬성하시겠어요.

신:그건 아이들의 인생이지 제 인생이 아니잖아요. 서로 좋아만 한다면 OK죠.

황:아들도 축구 골키퍼인데 나중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LG에서 뛴다면.

신:(활짝 웃으며) 조광래 감독이 가끔 그런 농담을 해요. 당신 아들이 당신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그러나 축구는 쉽지 않아요. 기회가 된다면 왜 안 좋겠어요.

황:조광래 감독을 부를 때 뭐라고 부릅니까.

신:감독님….

황:후배 선수들은.

신:그냥 이름을 불러요. 영표, 광민, 용호….

황:자신의 실수로 팀이 졌을 때 잠 못 이룬 적이 있나요.

신:모든 골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아요. 큰 스트레스를 받죠. 지든 이기든 경기만 치르고 나면 잠을 못 이뤄요. 새벽 4시경이나 돼야 잠이 들까. 일단 골을 먹으면 모두 골키퍼의 책임이 되죠. 엄청난 스트레스예요. TV로 볼 때 골키퍼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집중, 90분 100% 집중(목소리를 높여). 필드 플레이어만큼 안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경기 끝나고 나올 땐 그들 이상으로 온 몸이 땀에 젖어요. 사실 골키퍼는 집중력이 가장 중요해요. 한국 골키퍼 스타일 이해 못하겠어요. 쓸데없이 뛰고 다이빙하는 것 이해 안돼요.

황:국내 프로축구 선수중 가장 위협적인 스트라이커는 누굽니까.

신:김도훈. 난 상대 공격수가 어디로 움직일지, 어떤 슈팅을 할지 대부분 예측하고 움직이는데 김도훈만은 예외죠. 한마디로 그의 플레이는 종잡을 수 없어요.

황:러시아와 한국 축구가 가장 다른 점은.

신:한국은 너무 많이 뛰고 움직여요. 반면 유럽이나 러시아는 너무 많이 생각하죠. 그렇게 많이 뛰진 않아요.

황:나중에 죽으면 한국에 묻힐 겁니까? 구리 신씨 시조인데.

신:(껄걸 웃으며) 난 지금 죽고싶지 않아요.

황:한국에 와서 돈은 많이 벌었습니까.

신:세지 않아 모르지만 괜찮은 수준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하는데 나와도 함께 하잔다. 러시아에 돌아가서 올림픽 영웅과 얘기했다고 자랑할거라나.

사진을 찍고 집을 나서면서 냉장고에 붙어있는 러시아어 메모가 무슨 뜻인지 물어봤다. “아이들이 매일 보고 가슴에 새길 좋은 말들”이라는게 그의 대답.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