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성장은 둔화되고 물가와 실업률은 뛰고 있으며 주가는 바닥을 기고 있다. 원화가치는 엔화와 함께 끝없는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경제가 목을 매고 있는 해외경기는 날로 침체돼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수출까지 감소세로 몰아붙이고 있다.
▼경제위기에 대증요법만 남발▼
의약분업의 무모한 실시로 국민의 고통과 부담은 늘어만 가고 대한민국 제일의 건설회사 현대건설마저 휘청거려 국민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총체적 난국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또 한번의 위기가 우리를 강타할 것이다. 아니 이미 위기는 담장을 뛰어넘어 우리의 안방으로 돌진하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정부는 안일하고 무원칙한 대증요법으로 일관하고 있고 지도층은 민생문제와는 상관없는 권력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어째 상황이 외환위기 직전을 닮아가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회계실사도 끝나지 않은 현대건설에는 회생에 대한 확신보다 희망만으로 그동안 정부가 수없이 천명해온 구조조정 원칙을 저버리면서까지 2조9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지원을 결정했다. 정부측 견해로도 최소한 4조원의 재정파탄이 예상되는 의료보험 문제에 대해서는 장관의 사견이라지만 목적세 운운하는 어이없는 대책을 내놓고 있고, 연기금의 주식투자로 증시를 활성화한다는 얄팍하고도 위험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눈에는 국민의 지갑이 자신들의 지갑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정치지도자라는 이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이 판국에 이른바 대권주자들은 후원회라는 이름으로 1만2000명이다 1500명이다 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호화판 잔치를 벌이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향후 2년을 이런 식의 대권다툼으로 지새우면 우리의 앞날은 분명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은 부질없고 속셈이 뻔한 개헌 논의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으며 정국을 혼돈으로 끌어가고 있다. 대선 레이스에 열을 올리는 이들의 경제현실에 관한 인식은 4대 개혁은 성공리에 마무리됐고 하반기부터 경기는 호조국면으로 들어설 것 이라는 국회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개혁이 마무리됐고 무엇을 근거로 경기가 좋아진단 말인가. 현실을 모르고 한 발언이라면 자질이 의심스럽고 알고도 해본 말이라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이 와중에 정부는 언론과의 첨예하고도 소모적인 대립으로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가린다거나 한쪽의 편을 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 어려운 시기에 누구를 위해 위기를 심화시킬 긴장감 조성에 나서는가 하는 지적은 해주고 싶다.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경제를 젖혀두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진력하다 끝내 역사를 거꾸로 세우고만 정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회 각분야가 대립보다는 협력으로 난국을 타개해야 할 때이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원칙에 충실한 지속적 구조조정이다. 위기가 상수로 존재하는 한국경제는 구조적 부실을 남겨둔 채로는 어떤 경기부양책으로도 위기를 모면할 수 없다. 꾸준한 구조조정을 통해 강한 체질로 다시 태어나야 외부요인의 변화를 이겨낼 수 있다. 언제까지 미국과 일본 경기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원칙따른 구조조정 계속해야▼
두번째는 기업의 의욕을 북돋워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물론 그 구체적 목표에는 수출의 양적, 질적 증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과제가 상호 배타적이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은 정부의 능력이다.
이제 이 정권은 큰 업적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경제 안정에 주력해야 한다. 경제를 놓치면 모든 걸 잃는다. 이미 이 정권의 치적이라는 외환위기 극복, 남북정상회담 등이 경제문제의 그늘에 묻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와 지도층은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4대 개혁처럼 선언한다고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원칙을 중시하며 일관성 있게 정책을 실천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예종석(한양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