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각의 핵심은 동교동계 최고 핵심 세력이 인선을 좌우했고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소외됐다는 점이다. 박지원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기용엔 차기 대통령선거 관리의 전권을 위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현 상태대로라면 여권의 차기 대선 후보는 김중권 대표나 이인제 최고위원, 이한동 국무총리가 아니며, 이와 관련해 대단히 깊이 생각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이같은 발언이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몰고왔다. ‘3·26개각’에 따른 여권 내부의 권력구도를 3월28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분석한 내용이다.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으로 당내 최고의 ‘정보통’으로 알려진 정의원의 발언이었기에 “그럼 누가 유력하다는 얘기냐”는 등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정의원은 향후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기에 이같은 분석을 내놓은 것일까. 3월30일 여의도 한나라당사 제1정조위원장 사무실에서 정의원을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정의원은 “지금 한국은 큰 틀의 변화가 예고되는, 건국 이후 가장 ‘크리티컬’(Critical)한 시점에 와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먼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향후 정국구도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권이 김위원장 답방시 연방제 또는 연합제 통일 합의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들 정도의 ‘변혁’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같은 시도가 쉽게 관철되지 않는다 해도 여권은 정치구도를 지속적으로 뒤흔들 지렛대로 남북관계를 사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의원에 따르면 이 문제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포위하는 소위 ‘3김 연합’구도의 구축 여부가 판가름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 문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강력히 반대하는, 이념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 방향에 따라 3김연합 구도의 형성 여부와 견고성, 지속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YS의 ‘3김 연합’ 참여 가능성과 관련해 “YS는 대한민국의 근본 이념이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반대하겠지만, 이총재의 정권 장악 저지를 위해선 손잡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원은 또 DJ의 민주당, JP의 자민련과 함께 YS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민국당의 연합 형식으로 3자 연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또한 YS정권 시절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민국당 소속 한승수 의원의 외교통상부 장관 입각을 눈여겨볼 것을 주문했다.
▼“JP가 후보” “여권 흔들기”… 당내서도 정의원 발언 해석 분분▼
정의원은 또 3월28일 의총 발언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정권은 이총재에게 정권을 빼앗길 경우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결국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김정일 답방과 현대 문제를 최대한 매끄럽게 처리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오히려 정반대다. 정권의 명운을 가를 중대 고비에서 김대통령은 수구초심(首丘初心·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말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다)으로 다시 동교동계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또 정권재창출을 위한 배수진으로 DJP 공조와 3김 공조 틀을 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의원은 “DJ가 대선 후보와 관련한 자신의 의중을 쉽사리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며 최대한 ‘여권 내 권력 진공상태’를 오래 지속하려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를 위해 김대통령이 내년 1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도 대선 후보 선출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6월로 연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김대통령이 나름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대충 짐작은 하지만 밝힐 수는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당 내에서는 정의원의 의총 발언과 관련,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JP를 지칭한 것 아닌가”(서울 지역 4선 의원) “내년 대선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영남 지역 한 초선의원) “여권을 흔들기 위해 한 번 던진 말”(이총재의 한 참모) 등이다. 정의원의 예측이 맞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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