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니는 시체처럼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는 회사원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스)은 어느 날 아내 캐롤린(아네트 베닝)의 손에 이끌려 딸 제인(도라 버치)의 치어리더 공연을 보러 농구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레스터는 딸의 친구 안젤라(미나 수바리)에게 한 눈에 반해 잊고 지냈던 삶의 열정이 되살아난다. 스포츠카를 사고 안젤라가 원하는 근육질 몸매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는 이처럼 갱년기에 빠져 세상이 시들한 중년 남성의 삶이 펼쳐진다.
▽35세가 출발점〓남자들은 보통 40대부터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지만 정확히 말하면 노화가 시작되는 35세가 출발점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줄면서 신체 변화와 함께 심리적 위축으로 생활 전반에서 활력이 줄어드는 것.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20대 초반에 정점에 이르지만 35세 이후 매년 1%씩 감소하면서 내리막 길을 걷는다.
40∼60세 남성의 7%, 60∼80세 남성의 21% 정도는 혈중 남성호르몬치가 정상치 미만이다. 20∼30대 초반 남성의 정상수치는 9∼30¤/㎗인데 이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각종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고려대의대 안산병원 내분비내과 김난희교수팀이 40, 50대 남녀 350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의 42%가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인 골다공증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의 29%를 훨씬 넘는 수준.
▽70%는 우울증 경험〓남성 갱년기의 첫 번째 신호는 주로 성생활에서 나타난다. 80% 이상 남성이 성욕 감퇴를 경험한다. 성관계의 횟수 뿐만 아니라 성적인 상상력이나 환상 또한 시들해진다.
성욕 감퇴와 함께 발기부전 내지 발기불능도 자주 나타난다. 발기가 돼도 발기 상태를 유지하지 못해 성관계를 맺을 수 없어 ‘진짜 남성’이란 자긍심에 상처를 받는다.
또 갱년기 남성은 직장에서 활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갱년기 남성의 80%가 만성 피로감에 시달린다. 피로감을 이기기 위해 진한 커피를 자주 마시고 술에도 의지하지만 그럴수록 상태는 악화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든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갱년기 남성의 70%는 우울증을 경험한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도 갱년기가 다가옴을 알려주는 징조.
근육과 뼈도 점점 노화돼 다리가 부쩍 가늘어지고 등이 굽으며 신장도 줄어든다. 외관상 가장 뚜렷한 징후는 바로 복부 비만(그래픽 참조). 체지방이 증가하면서 하복부에 지방이 쌓이게 된다. 가슴은 훌쭉하면서 아랫배가 축 늘어지는 체형은 중년 갱년기 남성의 상징이다.
▽전립선암 유발할 수도〓남성 갱년기의 원인은 노화와 함께 음주 흡연 비만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이 크다. 또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도 갱년기를 가속화시킨다. 이런 유해인자는 남성호르몬의 분비 리듬을 깨뜨리기 때문. 특히 다량의 알코올은 간을 손상시키며 남성호르몬을 여성호르몬으로 변질시켜 가슴이 커지고 고환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단 갱년기 장애가 의심되면 남성호르몬 골밀도 검사 등을 받는 것이 좋다. 갱년기 증상 치료에는 호르몬 요법이 주로 사용된다. 남성호르몬의 주입은 단순히 성적능력의 고양뿐만 아니라 골밀도 증가로 골절을 예방해주는 등 신체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남성호르몬제는 알약 주사제 피부에 붙이는 패취제 등이 있다.
하지만 호르몬제는 전립선암 심폐기능 이상 수면무호흡증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또 전립선질환 비만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있거나 혈중 적혈구 수치가 높으며 심장기능이 좋지 않을 때는 호르몬 치료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도움말〓연세대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임승길교수, 명동이윤수비뇨기과원장, 미즈메디병원 김상우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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