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자신의 ‘미국 제일주의’ 전략이 미국내 보수주의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럽내 우방국들의 환영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독단에 반발 독자노선 모색▼
최근 몇주일 동안 유럽의 주요 일간지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부시 행정부가 구사하고 있는 ‘윽박지르기식 전술’과 유엔 기후협약에 대한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교토의정서를 파기하기로 한 부시 대통령의 결정과 관련,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몽드는 3월31일자에서 미국 행정부가 “도덕적인 리더십을 주장하는 국가로는 어울리지 않게 국제사회를 경멸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했다”고 논평했다. 이처럼 강력한 논평은 유럽내에 확산되고 있는 미국 행정부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2월초부터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이라크 문제를 놓고 중국을 궁지에 몰아넣었으며,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의지를 재확인했다. 또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억제하겠다던 부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파기했고 유럽연합(EU)의 해외개입을 위한 독립적인 군대 창설 계획을 비난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미국의 우방국과 전혀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럽은 미국이 다국적 협력보다는 힘의 정치와 독단적 결정을 선호하는 과격한 국수주의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공개석상에서는 여전히 웃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고위 관료들은 사석에서 부시 대통령이 위험할 정도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에도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종종 간헐적인 무역분쟁 때문에 평탄치 않은 적도 있었다. 미국은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다국적 무역협상에서 압력을 행사하면서 국제사회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미국과 유럽은 전략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건전한 관계를 유지했다. 초기에는 다소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아일랜드, 발칸반도, 러시아 등 유럽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중재자로서의 미국의 위치를 적절하게 구사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행동반경도 넓어졌다. 1999년에는 다국적군의 코소보 개입을 주도함으로써 유럽내에서도 강대국의 지위를 굳힐 수 있었다. 프랑스는 미국의 강대국화에 대한 뿌리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토의 입지 강화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사실 당초 미국에 코소보 문제 개입을 요청한 것도 유럽이었다. 요컨대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매우 협력적이었다. 1994년 한반도 위기때도 클린턴 행정부는 독단주의보다는 다국적 협력을, 대치보다는 협상을 선택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냉전시대에 구축한 우방국과의 관계가 불안해지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협상보다는 압력을 선호하는 것 같다. 물론 이 같은 초기의 독단주의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과거 공화당 정부는 초기에는 강경한 발언을 하면서도 결국 나중에 가서는 국제사회의 현실에 적합한 정책을 선택했다. 리처드 닉슨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소련과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했고 로널드 레이건은 ‘악의 제국(옛 소련)’과 군비통제 협상을 벌였다. 조지 부시는 옛 소련 붕괴 직전에도 대치상황을 피하려 애썼다.
▼국제사회 다극화 심화될수도▼
아이러니컬한 것은 미국의 독단주의의 망령이 유럽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EU는 국제적인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한반도와 중동 평화를 중재하겠다고 제안했다. 대(對)러시아 정책도 확립했다. 부시 행정부는 어쩌면 EU의 영향력 확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EU가 회원국간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편협한 국수주의적 목표를 추구하려 한다면 21세기의 국제사회에서 다극화(multipolar) 현상이 약화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필립 골럽(프랑스 파리 8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