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지휘자의 스타일에 크게 좌우된다. 로얄 필의 음악 감독이었던 앙드레 프레빈은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유명해서 1969년 런던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발탁돼 부진하던 악단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13년 간 뉴욕 필의 음악 감독이었던 주빈 메타는 로맨틱하고 경쾌한 표현에 능해서 어둡고 음산한 브라암스의 음악마저 건강하고 밝은 브라암스로 표현해 화제를 낳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휘자가 지휘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면 연주가 좀더 흥미롭게 들린다.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강약이 조절되고 감정 표현이 달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지휘자는 음악이라는 배의 노를 젓는 사공이다. ‘지휘계의 제왕’이라고 불릴 만큼 유명했던 베를린 필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음악적 해석보다 인상적인 지휘 제스처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지휘자가 지휘한대로 악단이 연주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지휘자의 미세한 손짓 하나까지 모두 인식해서 정확히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MIT 미디어 랩의 과학자들은 요즘 디지털 지휘봉과 지휘자를 위한 특별한 재킷을 개발하고 있다. 토드 맥코버와 그의 동료들은 ‘디지털 바통’이라 불리는 지휘봉을 개발했는데, 이 지휘봉으로 지휘를 하면 지휘봉의 움직임에 따라 컴퓨터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달라진다.
청중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지휘자가 잡고 있는 지휘봉 끝에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어 컴퓨터 오케스트라의 연주 템포나 음색을 조종할 수도 있고, 특정 악기에게 연주 시작 신호를 보내줄 수도 있다.
지휘용 재킷도 개발하고 있는데, 디지털 바통으로 얻은 손놀림 정보에다가 근육이나 몸 동작에 관한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지휘자가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컴퓨터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신호화하는 장치다.
상상해 보시라. 40명의 악단원 대신 40대의 컴퓨터와 스피커를 앞에 놓고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 지휘하는 모습을. 특수 재킷을 입고 디지털 바통을 들고 그가 열심히 지휘하면 컴퓨터들이 그 신호에 맞춰 연주하는 모습을 말이다. 좀 삭막해 보이긴 해도, 언젠가는 컴퓨터와 인간이 음악을 매개로 소통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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