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NBA에서 공식으로 발간하는 연감인 이 나오게 된다면, 2001년 4월 5일은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구? 바로 아시아인 최초로 왕츠츠(Wang ZhiZhi. 미국인들은 Won Zhizhi라고 발음하기도 한다)가 Dallas Mavericks에서 첫번째 경기를 치른 날이니까 말이다. 지난 1999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7번(전체 36번)으로 지명된 왕츠츠는 얼마 전 댈라스에 도착해서 2년간 31만 달러에 계약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포텐샬 ?경기 내적 외적으로- 이 단순한 금액이상이라는 것은 아마도 NBA에 있는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99년 드래프트에서 Wang Zhizhi보다 1순위 먼저 지명 받은 팀 동료 Calvin Booth조차도 말이다.
신장이 무려 7피트(213cm)가 넘고, 마치 190대 선수처럼 달릴 수 있으며 ? 적어도 World Level에서는 그랬다 ? 6m 25cm 밖에서 자유자재로 3점 슛을 터트릴 수 있는 선수. 더불어 이미 23살의 나이에 2번의 올림픽을 경험했고(그 2번의 올림픽에는 모두 Dream Team과 경기했던 경험이 있다), Pippen이나 Hill등에게 를 먹인 친구. 과연 경쟁심이 강한 이 23살의 동양인 농구 선수는 어떻게 될 것인가? Peja와 같은 성공적인 NBA 생활을 만들어 낼 것인가? 아니면 Ma Jian과 같이 선구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이제부터 그 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Yellow Man Can’t Jump?▲
사실 동양인의 NBA 도전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지난 1987년 중국의 Song Tao란 센터가 애틀랜타 호크스에게 3라운드 21번으로 지명 받은 것이 아시아 선수의 첫번째 NBA 지명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해의 드래프트 1번은 David Robinson. 그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3라운드의 지명이었지만 나름대로 중국이란 나라에서도 농구를 하는구나, NBA 관계자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음 해인 1988년 미국 NCAA에서 명성을 날린 레바논 태생이자 Syracuse 출신의 명 센터인 Rony Seikally가 NBA에 진출을 하긴 했지만 그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Greece 국적 선수였다(만일 Seikally가 첫번째 아시아 출신 선수라면, Tiger Woods의 국적도 태국이 아닐까? 그리고 Rony가 레바논 국적을 취득한 것은 얼마 전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현직 레바논 대통령이 자국 팀의 승리를 위해 대표팀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고, Seikally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태까지의 그의 국적은 레바논이 아니라 미국과 그리스의 이중 국적이었다).
그 후의 동양인의 NBA에 대한 도전은 좀 더 실질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1995년, 이미 ‘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중국 대표팀의 Ace로 뛰었던 Ma Jian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후 유타대학(Nets의 Van Horn과 같은 시기에 선수생활을 했다)을 졸업하고, 드디어 NBA로 향하는 문을 두드린 것이다. 당시 Ma가 도전했던 팀은 매년 꼴찌 1순위로 거론 받던 LA Clippers. 그렇지만 NBA의 문은 동양인에게 쉽게 열리지 않았다. Ma Jian은 LA의 시범 경기 로스터 마지막까지 포함됐었지만(물론 실력 외적인 요소로) 최종 엔트리 조정 때 결국 계약되지 않았다. 그후 Ma Jian은 다시 한 번 NBA를 노리기 위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필리핀 등 외국을 전전하며 기회를 계속 엿보았지만 ‘나이’와 ‘돈’이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NBA에 대한 꿈을 접게 된다. 현재는 중국 갑급 농구 리그(중국 프로 농구 리그)의 Beijing Ducks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Ma Jian의 경우 미국 유학 당시 중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갔기 때문에 이후 모든 중국의 국가 대표 선정 때마다 제외됐고, 미국에서도 같은 팀원들과 생긴 언어적 혹은 문화적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92년 당시보다 실력이 떨어져 버린 불행한 경우였다. 92년 대표팀에 있었을 때의 Ma Jian은 유타 시절 로 불리던 그 선수가 아니라 지금 우리 나라의 전희철 급 신장을 가지고 허재의 개인기를 보유했던 선수였었다. 만일 Ma Jian이 계속적으로 높은 레벨에서 농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거나, 유타 대학이 아니라 좀 더 중국인이 많고, 출장 시간을 벌 수 있는 대학들로 진학했다면 현재 우리는 Ma Jian의 모습을 중국이 아닌 NBA에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쯤 중국에서는 Ma Jian의 트레이드 마크인 훤칠한 대머리가 대 유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외에도 최근에는 일본 전국 고교 대회에서 3년간 MVP를 독차지 했었고, 최연소의 나이로 대표팀에 뽑혔던 타부세란 가드가 BYU 하와이 분교에 진학해서 현재 유학 중이고, 얼마 전 팀이 해체된 JBL의 Hasegawa Makoto는 Mac Hasegawa란 이름으로 현재 IBL같은 하부 농구 리그를 전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과연 동양인은 농구로는 꿈의 리그인 NBA에 진출할 수 없는 것인가?
그 해답을 아시아 농구 팬들은 아시아 농구의 최정상인 중국팀에서 찾고자 했고 있으며, 중국팀에는 그런 기대에 부응할 선수들이 몇몇 있다. 현재 중국에는 Wang을 제외하고도 내년 NBA 드래프트에서 1번이 유력시 되고 있는 20살의 장신 센터 7-6(228cm)의 Yao Ming과 26살의 이번 시즌 전까지 Suns로부터 영입설이 있었던 6-11(211cm) 280pd(127kg)의 센터 겸 파워 포드 Menk Bateer, 그리고 NBA에서 줄곧 구애를 받아온 6-7의 스윙맨 Hu Weidong ?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직후와 이번 시드니 올림픽 직후 계약 조건까지 정했다가 성사 직전에 부상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 ? 등이 있다. 모두 NBA에서 뛸만한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Wang이야말로 NBA에서 성공할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16cm의 장신의 신장에 동양인으로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스피드와 유연성 그리고 타고난 볼에 대한 감각. 비록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길러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의 가능성은 역대 그 누구보다 더 크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Wang은 어떻게 해서 Donn Nelson의 눈에 들어오게 됐을까?
▲“I Love his game”▲
Donn Nelson(Dallas의 HC인 Don의 아들이자 Assistant Coach)은 Wang에 대한 이야기를 95년 세계 Jr. 선수권 이후 처음 들었을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Wang은 세계의 가장 뛰어난 영스타들을 상대로 무려 경기당 평균 22.3득점 11리바운드 85.7%란 센터로선 놀라운 슛 터치를 보여주며 세상에 Wang Zhizhi가 있음을 널리 알리게 된다. 다음은 16살로 당시 팀내에서 가장 어린 Wang Zhizhi가 올린 성적표다.
득점 2위:22.25점
야투율 5위:65%
자유투율 4위:85%
공격 리바운드 3위:4.63개
수비 리바운드 3위:6.50개
어시스트와 3점 슛을 제외한 모든 카테고리에서 팀을 이끌었던 Wang은 당연히 대표팀에 최연소 선수로 뽑히게 됐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특히 Wang Zhizhi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과의 친선 경기를 포함한 2번의 드림 팀과의 경기에서 전혀 위축됨 없이 플레이를 했으며, 이런 그의 열정적인 플레이에 미국 NCAA 농구 관계자들 및 NBA 관계자들은 한 눈에 반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Wang의 대한 미국 농구 관계자들의 평은 신장과 왼손이란 점 그리고 슈팅 터치가 좋다는 점은 매력적이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대부분이었다.
96년에 최연소의 나이로 올림픽을 맛보는 기분으로 나갔던 Wang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대망의 8강 진출이란 거창한 목표를 가진 채 호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팀의 최고의 약점인 PG 부재와 팀의 기둥이던 Wang Zhizi - Bateer ? Yao Ming의 이 경험 부족으로 경기 초반에 파울 트러블에 걸리는 우를 범하며 8강 진출은 꿈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예선 마지막 경기에선 유럽의 강호인 이태리를 압도적인 골 밑 공격을 무기로 꺾기도 했지만 예상보다 실망스런 결과임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Wang이나 Yao 개인적으로는 시드니 올림픽은 미국의 농구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 농구 경연장 같은 무대였다. Wang은 기존의 외곽 슛을 더욱 더 높여서 무려 41.7%의 3점 슛을 선보였으며, Yao의 경우 그 놀랄만한 신장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면서 자신들의 몸값을 높였다. 여기다 시드니 올림픽은 중국 농구 협회로 하여금 폐쇄적인 기존의 정책으로는 세계 농구의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들었고, 자신들의 유먕주들을 해외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이런 중국의 변화를 눈치 챈 Dallas의 적극적인 구애 ? 미국 현직 상원의원과 구단주까지 일개 농구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갈 정도였다 ? 로 결국 중국 농구 협회 측에선 대승적인 차원(예를 들어 중국 인민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다는)에서 Wang의 중국 진출만 허가하게 된다(Yao의 경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미국 진출을 허가하지 않았다).
▲From Chinese to the Chalupa Boy▲
Wang의 미국 진출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들 익히 알고 있을 미국 정찰기의 추락 사고로 인해 중-미간의 긴장이 갑작스럽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Wang의 Dallas 입단을 계기로 은근히 그 옛날의 Ping-Pong 외교를 꿈꿨던 미국 입장에선 어지간하게 놀랐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외교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일단 굴러가기 시작한 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Wang은 Dallas에서 예정대도 연습에 참가했고 결국 4월 5일 대 Hawks 전 전반전 종료 20여초 전 출전하게 된다. Dallas측에선 Wang의 첫 골을 위해 Finely와 Wang의 Pick and Roll를 지시했고 작전도 거의 성공했지만 후에 인터뷰에서 Wang이 이야기한 것처럼 10억 인민이 이 중계 방송을 보고 있다는 부담감과 첫 골에 대한 욕심이 역사적인 동양인 NBA 선수의 첫번째 볼 소유를 실책으로 끝나게 만들어 버린다. World Level에서의 어설픈 수비만 상대해왔던 Wang으로선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두번째 기회가 곧바로 찾아오게 된다. 경기 종료 7분전 Dirk와 교체 출전한 Wang Zhizhi는 이번엔 Howard Eisley와 Pick and Pop(Pick and Roll과 달리 Pick을 건 선수가 밖으로 빠져 나와 외곽 슛을 던지는 Pick and Roll의 변형 전술임)을 시도하고, 3점 슛 라인 한 발 앞에서 멋진 외곽 슛을 보여줬으며 여기다 다음 공격권에선 Nash의 어시스트를 받아 Little fade-away jumper를 성공시키면서 팀의 101점째를 득점하게 된다. 특히 Dallas의 홈 구장인 Reunion Arena에선 Mavericks가 100득점을 넘길 경우 구장 내 있는 멕시칸 패스트 푸드점인 Taco Bell에서 “Chalupa”란 음식을 모든 팬들에게 무료로 선사하는데, Wang의 101점째 득점으로 모든 Dallas 팬들이 을 누리게 된 것이다. 경기 후 댈라스 구단주인 Mark Cuban은 을 성공시킨 중국인 청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He went from the new guy from China to the Chalupa Boy, and that's pretty special around here”
중국인 신입 농구 선수에서 Chalupa boy로…멋진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날 Wang Zhizhi의 데뷔전 성적은 8분간 출장 6득점 3리바운드 2파울. 5개의 슛 중 2개를 넣었고, 파울로 얻은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켰다. 2개의 파울 중 한 개는 완벽한 슛 블로킹에 가까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록으로 봐도 기대이상이었다. 이날 경기에 고무받은 Wang은 경기 후 미래엔 자신이 오늘 넣은 득점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릴 것이라고 NBA에 대한 자신감을 펼쳤다고 한다. 말 그대로 “매우 성공적인 데뷔”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NBA 그 꿈의 무대▲
이미 NBA 명예의 전당측에선 Dallas의 새로운 16번 선수가 입고 뛴 홈 유니폼과 신발, 시합구를 영구 보존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구리빛 피부를 지닌 동양인들의 유럽 및 구미의 스포츠에 대한 도전사는 그 처음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됐고, 이미 그 성과물도 많이 나와 있는 상태다. 야구에선 박찬호와 노모, 그리고 올해는 이치로가 MLB에서 정상급의 선수로 인정 받고 있으며, 축구에서도 알리 다에이나 나카타, 그리고 예전의 차범근이 동양 스포츠맨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유독 농구만은 동양인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인정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인종적인 문제로 인한 차이점 때문일 것이다.
인 농구의 특성상 장신이거나 혹은 좋은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들만이 NBA에 진출할 수 있는데 동양인의 신체 구조로 흑인의 운동 능력이나 백인의 신장과 맞서 싸우긴 너무 힘이 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상황이 약간 다르다. 10억이란 어마어마한 인구가 위에서 언급한 동양인의 하드웨어적 불리함을 극복하게 만들었고, 공산권 국가 특유의 영재 교육은 소프트웨어적인 장점까지 겸비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들의 예를 통상적인 아시아권 선수들에게 적용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Wang Zhizhi, 더 나아가 Yao 등 일부 중국 농구 선수들의 NBA 진출이 동양인의 농구에 대한 벽을 깨는데 큰 일조를 하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일례로 미국에 있는 동양계 농구팬들은 그의 Dallas의 입단을 국적에 관계없이 대부분 환영한다고 했으며 이것은 그들이 Wang Zhizhi에게서 자신들이 이루지 못했던 아니 꿈꿀 수 조차 없었던 꿈 ? NBA진출이란- 의 현실화를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은 농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동양인으로 태어났지만 열심히만 하면 저 Wang Zhizhi처럼 NBA에 진출 할 수 있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십여년 전의 Divac나 얼마 전의 Kukoc 그리고 Peja 등의 선수들을 보면서 유럽의 어린 농구 영재들이 생각한 것처럼 말이다.
Wang의 NBA 진출이 세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처럼 한낮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실패가 “Yellow Man Can’t Jump”란 영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우리는 그에게 기대해봐야 할 것이다. Wang이 아시아 선수권에서 붉은 색 유니폼을 입고, 불쌍한 우리 나라 선수들을 가지고 놀지는 몰라도, 일단 지금 현재는 Wang Zhizhi의 선전을 기원해야 한다. 젊은 Wang Zhizhi가 가고 있는 길은 고독한 선구자의 길이므로.
PS. 현재 Wang Zhizhi가 Dallas의 PO 12명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은 아주 적다고 볼 수 있다. Dallas로선 몇 년 만의 PO진출이고, 올해야말로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팬들이나 선수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NBA에서 고작 10경기도 채 못 뛴 선수를 PO에 출전 시키는 일은 모험이며, Don Nelson이나 Mark Cuban이 그렇게 위험한 도박을 걸진 않을 것 같다. 자신들의 말대로 Wang은 그들의 장기적인 계획안에 들어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그렇다 해도 양복을 입은 채 NBA PO에 참가해본 것과 해보지 않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며, 그것은 Wang Zhizhi에게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자료제공 : 후추닷컴(http://www.hooc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