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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ngo는요]환경모임 '고란초'

입력 | 2001-04-12 11:00:00


암벽에서 자라며 만고의 풍상에도 변함없이 푸른 잎사귀를 뽐내는 고란초. 상록의 고란초 만큼이나 항상 푸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아줌마들이 있다.

충남 부여군 임천중학교 23회 졸업생들의 모임인 '고란초'(회장 양정숙) 회원들. 자고 일어나니 열 다섯살에서 마흔 다섯살로 변해버렸다는 동갑내기 아줌마들이다.

동창들이 만난다면 흔히 번듯한 음식점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들은 아주 색다른 곳에서 만난다.

등산로 매표소 앞이 고란초 회원들이 모이는 곳이다.

남편 흉·자식 자랑 등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산에 오를 때는 평범한 아줌마 등산객들.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자연보호대원으로 변신한다.

가방속에서 집게와 봉지를 꺼내들고는 뿔뿔이 흩어져 쓰레기 줍기 작전에 돌입한다. 쓰레기가 보이면 누가 말을 시켜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 캔, 병, 담배꽁초, 과자·라면봉지 폐비닐….

쓰레기 종류가 하도 많아 나열하기에 숨이 찰 정도다.

하산한 뒤 쓰레기를 분리 수거함에 넣으면 이들의 임무는 끝. 지난 3월 18일에는 도봉산에서 모임을 갖고 쓰레기를 주웠다.

'고란초' 아줌마들이 자연보호 운동에 뜻을 모으게 된 것은 지난 1월 인터넷 동창모임을 가지면서부터. 30여년 동안 서로를 잊고 지냈던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사이버상에서 만났다.

뜻깊은 만남의 장소를 물색하던 중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고란초 총무 유명옥씨가 등산도 하고 쓰레기도 줍자고 제안했다.

"나이가 들수록 환경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등산하면서 쓰레기를 줍는게 일석이조더라구요. 자연도 보호하고 건강도 좋아지고…."

'자연사랑'으로 똘똘 뭉친 이들도 처음 만날 때는 서로 어색해 어쩔줄 몰랐단다. 풋풋한 중학생으로만 생각했는데 몸이나 얼굴이나 너무도 중후해진(?) 모습에 깜짝 놀랐다는 것.

그러나 옛 추억을 곱씹으며 쓰레기를 줍다보면 어느새 서로가 30여년전 열다섯살 단발머리 중학생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달 15일로 예정돼 있는 고란초의 4월 모임 장소는 관악산.

지난 모임에 함께하지 못한 동창들이 이번에는 꼭 참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전국의 모든 산들을 누비며 쓰레기를 줍겠다는 것이 이들의 야무진 계획이기도 하다.

동창모임이기는 하지만 고란초를 작은 환경단체로 보아도 무리가 없지 않냐는 질문에 유씨의 명대답.

"아줌마들만 있으니 여성단체 아닌가요?"

이희정/동아닷컴 기자 huib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