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5시경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단지 앞 B학원. 5, 6세 가량의 유치원생 10여명이 보조 교사 한 명과 함께 승합차량에 올라탔다. 그러나 문이 닫히는 순간 아이들이 미처 안전띠를 매거나 자리를 정리할 시간도 없이 버스는 급히 속도를 높였다. 아이들은 오래 전부터 이 같은 ‘급출발’에 익숙해진 듯 오히려 무덤덤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미술학원 앞 상황도 마찬가지.
학원 앞에 주차 중인 통학차량에는 ‘어린이 보호차량’이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그러나 안전운행을 위해 규정상 자동차 모서리 네 군데에 달아야 하는 표지등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무늬만 어린이 보호차량인 셈이다.
5∼7세 가량의 유치원생들을 실어 나르는 통학버스의 대부분이 이처럼 ‘안전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다. 대부분 근거리를 운행하고 있어 안전상 문제는 없다는 시각도 있지만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띠를 매도록 하거나 시설을 보완하는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실정이다. 통학버스는 서울에서만 362대(3월 말 기준)가 등록돼 있다. 이외에 무단 운행중인 차량을 합치면 실제로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추산이다. 이와 관련해 10일 중부고속도로에서 청강문화산업대 통학차량이 5m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형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안전띠’를 착용했다는 점은 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서울 M유치원 원장은 “아이들이 자주 타고 내리는 데다 여러 명이 끼어 앉아 갈 때도 있어 일일이 안전띠 착용을 지도할 수가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학부모 김희영씨(34·잠원동)도 “보조 교사가 동행하고는 있지만 만약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일일이 아이들을 챙길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육원 조시영 교수는 “아동 통학용 버스가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고 일반 차량의 색깔만 바꾼 채 운행하고 있어 안전관리에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승강대 높이나 안전띠가 어린이의 신체적 특성에 맞춰져 있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여러 곳의 학원을 돌며 운행하는 외주 업체에 학생 수송을 의뢰하는 학원도 많은데 이들 업체는 시간에 쫓겨 안전 규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또 공단의 청소년교통안전교육 담당 이후방씨(42)는 “인솔교사와 통학버스 운전자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지만 인력 및 예산문제로 아직 국내에는 이러한 교육과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학부모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일반 승합차 대신 좌석크기나 안전띠가 어린이 몸 크기에 맞춰진 어린이용 버스를 통학버스로 별도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경제적 문제로 ‘소수’에 그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15인승 일반 승합차나 미니버스의 경우 1300만원 정도면 살 수 있으나 30인승 이상인 어린이용 통학차량은 3000만원 정도로 값이 배 이상”이라며 “영세한 동네 학원의 경우 보험료 차량할부금 운전사 월급까지 매달 유지비 300여만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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