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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대중음악산책]루시드 폴의 어쿠스틱한 풍경화

입력 | 2001-04-13 14:54:00


인류의 서사예술이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두 지상 명제로 인해 규정된다면, 음악은 어쩌면 ‘솔’(soul)과 ‘스윙’(swing)이라는 두 긴장의 축을 오가는 추와 같을지도 모른다. ‘soul’이 내면으로 침잠하는 동감과 성찰의 세계라면 ‘swing’은 심장 박동수의 승압과 함께 분출하는 공동체적 일체감과 같은 것이다. 선율 중심의 발라드나 민요적 성격의 블루스 같은 것이 전자에 해당하는 대중음악 갈래라면 떠들썩한 빅밴드 재즈나 광란의 록 음악 또는 댄스뮤직, 나아가 거리의 투쟁가들이 후자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인디 진영의 상쾌한 밴드 ‘미선이’의 리더 조윤석이 ‘루시드 폴’(Lucid Fall)이라는 새 이름으로 조용히 발표한 솔로앨범을 소개하기 위해 긴 설명을 앞세웠다. 인디밴드 하면 시끄러운 펑크 음악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조윤석이 우리에게 던진 음악적 화두는 다름 아닌 어쿠스틱 기타가 사운드의 주축을 이루는 포크 음악이다.

이 앨범은 ‘흘러간 옛 노래’ 수준으로 퇴락한 포크음악에 대한 21세기 세대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모던 록 밴드의 기수는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여하한의 비판적 선동이나 이성애에 대한 피상적인 감정이입을 완전히 거세한 대신, 세계와 대면하는 자신의 무의식을 벼르고 별러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또한 동시에 반짝이는 유리와 같은 질감을 분만해 낸다. 포크음악이 사회적 관심이나 청년의 낭만주의에서 내면의 성찰로 전화하는 시대의 풍경을 우리에게 펼쳐보인다.

이 세련된 감수성의 풍경화는 이미 1980년대의 프로젝트 듀오 ‘어떤 날’이 발표한 두 장의 앨범이지만, 이 듀오의 핵심멤버였던 조동익의 1994년 빛나는(그러나 시장에서는 참패한) 솔로 앨범 ‘동경’(憧憬)에서 우리는 잠깐 조우한 적이 있다. 이 시대의 죽림칠현 같은 뮤지션은 사소한 구석구석까지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놀라울 정도의 절제 미학과 경탄할 만한 집중력의 텍스트를 극적으로 형상화했다. 그것은 우리 대중음악사가 또 다른 경로로 도달한 감수성의 형이상학의 최정상이었다.

루시드 폴, 조윤석은 선각자들이 만들어 놓은 오솔길을 밟으며 걸어가지만 그의 시선은 보다 투명하다. 그는 조동익의 텍스트에서 완벽하게 짜여진 틀을 조심스레 허물고 그 음과 음 사이를 악기와 악기 사이를 투명한 빈 공간으로 설정한다. 이 미세한 투명성이 15년 또는 7년 사이 만큼의 감각의 거리이다.

포크 음악은 ‘soul’과 ‘swing’ 사이에 지적인 문제의식과 세련되고 상징적인 노래말의 품위를 제공함으로써 짧은 역사임에도 대중음악이 모든 다른 음악을 제치고, 20세기의 주류음악으로 등극하는 데 결정적인 일익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련된 미니멀리즘으로 진화하였음을 이 신작앨범은 여실히 대변한다.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풍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authodox@orgi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