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자, 백마 탄 왕자/장 클로드 카우프만 지음/성귀수 옮김/305쪽, 8200원/문학세계사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즐겨 표어로 삼았던 모토다. 이 말 대로 ‘자유’와 ‘고독’은 곧잘 함께 따라다니는 짝이다.
특히 가족 없이 생활하는 독신 생활자에게 이 말은 절실한 구호일지도 모른다. ‘고독’을 벗어버리고 싶지만 ‘자유’가 함께 떠날까봐 선뜻 결심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1991년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유럽연합의 한 기구)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카우프만에게 별난 과제를 위탁했다. ‘독신생활’을 주제로, 개인생활의 발전이 동반하는 유럽인의 고독 양상에 대해 연구해달라는 것. 그는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등과 관련된 280권이나 되는 책을 꼼꼼히 숙독했다. 학자의 서가에나 꽂힐 전문적이고 딱딱한 책 한 권이 나올 뻔했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이 이 연구의 방향을 틀었다. 프랑스의 여성지 ‘마리 클레르’가 한 여성의 독신생활 수기를 싣자 독자들이 300여 통이나 되는 편지를 보냈다. 잡지사는 ‘이 편지들을 분석해달라’고 이 ‘독신전문 사회학자’에게 부탁했다. 때로 절절하고, 때론 심각한 독신여성의 편지들이 학자의 돋보기 아래 놓였다. 그 결과 학문적 분석과 ‘사람의 숨결’이 한데 엮여진 책이 나왔다.
저자는 독신과 결혼의 선택을 ‘덜 나쁜 쪽 선택하기’라고 단언한다. 결혼생활은 곧잘 사회생활의 반경을 협소하게 만들며 젊음과 창의성에 마침표를 찍도록 한다. 반면 독신생활자는 자유와 함께 공허감도 쉽게 맛본다. 특히 ‘오늘은 뭘 할까, 왜 그걸 해야 할까’라는 동기부여의 결핍 때문에 머릿속이 산만해질 때가 많다. 고독이 여기에 치명타를 가한다.
“여자의 고독은 형광 칠 같아요. 날이 어두워지면 빛나기 시작하죠.” 잡지사에 투고된 한 여성의 고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신생활 속에는 개발해볼 만한 장점이 많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언제나 생활리듬을 다시 정비하며 자기 정체성을 혁신하는 여성에게, 독신생활이란 창의와 모험이 수놓아진 드라마틱한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적 욕구불만과 안정감의 결핍 등은 그 과정에서 주의 깊게 해소해나가야 할 난제임에 틀림없다.
‘백마 탄 왕자’, 이상형의 남성은 그렇다면 포기해야 할까? 저자의 의도는 ‘현실의 왕자란 없다’는 것. 모든 문제를 자기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독신녀는 현실 자체에 사는 존재다. 반면 운명처럼 나타날 ‘왕자’는 이와 대립되는 꿈의 세계 속 존재다. 결국 둘이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꿈의 세계 속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백마 탄 왕자는 열정이 가라앉지 않도록 돕는 꿈의 도구다. 올바르게 역할을 부여할 경우 여성이 걷는 자립의 발걸음을 공상 속의 그가 지탱해 준다. 그러나 언젠가 나타날 거라고 맹목적인 믿음을 갖는다면, 그에 대한 갈망이 오히려 여성의 발걸음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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