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맞아 신부님들이 말합니다. “고백 성사는 나를, 나의 죄를 고하는 것입니다. 가족의, 이웃의, 직장동료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게 아닙니다. 누가 어쨌기에 라고 하지 마십시오. 남의 잘못, 남 탓 만 이라면 밀고(密告)일뿐 고백성사가 아닙니다. ‘내 탓’과 과오와 죄를 털어 놓으십시오.” 그렇게 웃으며 말합니다.
이 부활절 , 공직의 높고 낮은 나으리 여러분이 ‘나라사랑 고백성사’를 한다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얼마전 장관이 바뀌고 차관이 새로 임명되었습니다. 뒤이은 내부 인사로 누가 잘되고 물먹을 것인가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다들 기대와 설렘, 두려움으로 지내는 나날입니다.
▼모두들 걱정은 대단 하지만▼
장관 차관 나으리 라면 이렇게 고백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나라와 사회의 잘되고 못되고는 내 아래 관료들에 달렸다’고 말입니다. 아래 사람들의 그 악명 높은 무사안일, 복지부동, 장관을 그저 지나가는 과객(過客)으로 여기면서 ‘영원한 제국’으로 똘똘 뭉쳐 나그네를 물먹이는 관료체질에 두려움을 말할 것입니다.
높은 자리 나으리들의 의구심과 걱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지난번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이가 책에 썼듯이, 장관 임명 전화를 받은 지 10분만에 명함을 찍어와 대령하는 순발력, 눈감으면 코 베먹는 면종복배, 숨가쁘게 바쁜 시간에 가장 정확한 판단을 요하는 문제의 결재판을 들이미는 속여먹기 기질, 그것을 무서워합니다. 개혁을 외치는 강연을 듣고 나서도 돌아서면 돈을 받는다는 지난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의 개탄도 상기합니다.
공무원으로 출발해 장관을 두번이나 지낸 L씨는 말합니다. “나도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공무원들 보고서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페이퍼워크만 보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한국 천지가 기가 막히게 잘 돌아 갈 것처럼 착각하게 되어 있어 거기 함몰되면 죽습니다.” 여기서 수백년전 중국 황제의 장탄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의 보고서를 보노라면 마치 꽃잎이 하늘에서 춤추며 내려오는 것처럼 아름다워서 짐(朕)도 몇번이나 칭찬하며 특별히 은전을 베풀고 청하는 일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뒤에 가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살펴보면 한가지도 몸소 실행한 것이 없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아래 나으리들, 장관 차관을 모시는 공무원들의 걱정과 두려움은 그것대로 심각합니다. 제 신상에 미치는 유불리의 작용에서부터, 순수한 나라 걱정, 고관 나으리들의 실책으로 사회나 민초에 또 어떤 횡액이나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정치판의 기질대로, 인기발언이나 하고 쇼나 한판 벌이다가 장관역임 이력이나 한줄 챙기고 사라진다는 걱정입니다. 어디 그런 장관들이 건국이래 하나 둘이었습니까? 신문에 나는 한줄 기사때문에, 여론이나 민심때문에, 부처를 달달 볶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안절부절형, 직업 공무원은 공도 없는 ‘공무원’(功無員)이요 모두 도둑놈들이라고 몰아붙이는 홀로개혁형, 단기적인 실적을 보이려고 무리한 주문으로 채찍질하는 건수주의형, 그런 장관들이 어디 한 둘이었습니까?
▼당신의 과오부터 털어 놓길▼
정치인 나으리들은 그런 공직 사회 위아래를 통째로 걱정합니다. 얼마전 ‘실패한 관료’를 질타하며 장차관 관료 전체를 통박한 정치인이 있지않았습니까. ‘우수한 관료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호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공무원을 개혁대상으로 찍어 복지부동으로 있다가 감찰이 진행되면 튀어오르는 스프링형, 인사청탁 줄을 찾아 헤매는 줄대기형, 시키는 일만 좇는 무사안일형, 돈만 밝히는 하이에나형, 힘있는 데를 찾아 변신하는 카멜레온형, 일을 떠넘기기만 하는 핑퐁형, ‘나그네’인 장관을 길들이려하는 터줏대감형 등으로 독하게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또 그런 말을 하는 정치인과 장차관 공직자 모두가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고 고백성사를 할 터입니다. 그러면 정부와 국회의 나으리들은 입이 없을까요. 화장장이나 원자력발전소를 제 동네에 못짓게 하는 악착같은 국민을 또 ‘밀고’하지는 않을까요.
이번만이라도 다들 내 탓을 생각해 보고, 거기에 나라와 사회가 멍드는 원인은 없는지 곰곰 캐볼 수는 없을까요. 이 부활절에 눈을 감고서.
김충식seesche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