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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가족주의는 야만이다

입력 | 2001-04-13 18:59:00


◇가족은 신성하다, 그러나 가족주의는…

이득재 지음

272쪽 1만원 소나무

“가족(이기)주의가 나쁘다는 주장은 국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가족주의가 없어질 수 있는 사회 영역은 마련하지 않고, 한편에서는 가족(의 대표)에게 모든 생존의 책임을 전가시키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가족주의가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 이데올로기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런 주장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안전망’도 갖추지 않은 채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의 가장들을 직장에서 거리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도 이에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정경유착과 지역주의 등 한국사회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족주의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주의를 조장하는 국가체제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를 ‘가국(家國)체제’라고 비판한다. ‘가국체제’란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家)가 국(國)의 역할을 대리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가국체제에서 국가는 남자에게 가부장권을 부여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국민의 ‘욕망’이 국가의 내부까지 흘러 들어오지 못하도록 ‘욕망의 흐름’을 차단한다. 가부장적 특권을 부여받은 가장이 국가의 책임을 대리하기 때문에 가장을 통해 가족 단위로 사회구성원들을 통제하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생길 경우 “실직한 가장이 자살할 수는 있어도 국가는 자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욕망의 통제 장치는 ‘가족제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영문화’ 속에도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인구조사, 주민등록증 제도, 과세제도, 교통신호 체제 등이 모두 욕망의 흐름을 통제하는 국가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가족주의를 국가와 욕망의 문제와 연관시켜 본격적으로 파헤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효율적 공격을 위해 가족주의 또는 ‘가국체제’라는 상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흔적이 역력하다. 저자의 거친 가족주의 청산 구호 아래서는 가족주의 대신 저자도 ‘신성’하다고 인정하는 ‘가족’이 먼저 무너져버릴 위험이 크다.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