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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황수섭/애덤 킹은 희망을 던졌다

입력 | 2001-04-15 18:41:00


봄 햇살이 따스했던 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 경기장의 스타는 시구를 한 아홉 살의 애덤 킹(한국명 오인호)이었다. 3년 전에 입양한 쌍둥이 아들 대한이와 민국이, 그리고 두 명의 낳은 딸을 키우는 입양 부모의 처지에서 상기된 마음으로 킹군의 시구 장면을 지켜보았다.

킹군이 주는 감동과 양부모 밥 킹 내외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나는 흥분됐다. 서툰 말이지만 “희망과 용기를 가지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 킹군이 던진 것은 야구공이 아니라 ‘희망과 감동’이었다.

95년 미국으로 입양될 때 4세였던 킹군은 선천적으로 다리가 썩어가는 희귀 질병과 양손 손가락이 붙은 중증장애를 가졌지만 이날 야구장의 그는 금속제 의족으로 걸어서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와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맑고 밝은 웃음과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3만여명의 관중 앞에 섰다. 육체적 장애와 정신적 어려움을 극복한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다. 낳은 자녀 3명과 함께 8명의 입양자녀(6명은 장애인)를 키우는 양부모 킹씨에 대해서는 ‘사랑의 화신’을 만난 듯한 존경심이 우러났다.

그런데 킹군의 야구공은 감동만큼이나 큰 착잡함을 내게 던져주었다. 해외입양 장애아 킹군이 아니라 국내입양 장애아 오인호군으로 마운드에 설 수는 없었을까? 야구장에 초대된 장애인들은 킹군으로부터 어떤 ‘희망의 공’을 받았을까? 입양원과 보육시설의 아동들이 받은 공은 어떤 것이었을까?

입양에 대한 편견, 장애인에 대한 부족한 의식과 복지정책이 어우러져 ‘오인호’가 아닌 ‘애덤 킹’이 시구하도록 했다고 생각하니 절망과 부끄러움이 나의 가슴을 눌렀다.

해외입양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해외입양을 통해서 14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정을 얻고 사랑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 살고 있다. 더구나 장애아가 해외에 입양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살았으면 어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가정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정을 제공해 우리의 자식으로 키우는 성숙한 사회가 돼야 한다. 핏줄에 대한 집착과 입양에 대한 편견이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게 했고 킹군이나 ‘오체불만족’의 저자인 일본인 장애인 오토타케 히로타다에게는 환호와 갈채를 보내지만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면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그릇된 의식이 장애고아 수출대국으로 만들었다. 54년부터 99년 6월까지 입양된 장애아 3만2814명 중 국내 입양은 0.5%인 168명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부끄럽다.

장애아를 포함해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입양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입양홍보회(MPAK)에서 열린 킹 부자 환영회에서는 얼마나 여유가 있기에 자신이 낳은 3명의 자녀가 있는데도 8명을 입양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여기에 대한 킹씨 부부의 답변은 경제적인 부유함도 국가의 지원도 아니었다. “애덤을 입양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쌍한 장애아’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들보다 더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입양했습니다.” 킹씨는 “사랑을 줄 마음의 준비만 돼있으면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숙된 의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입양에 대한 글을 싣고 입양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동화를 개발하는 한편 ‘입양의 날’ 등을 정해 입양이 먼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의 진보도 있어야 한다. 특히 장애아 입양가정은 희생과 수고가 크므로 양육보조금 지급을 현실화해야 한다. 또 충분한 재활치료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입양 휴가도 시행해 가정이 필요한 아동에 대해 깊은 사랑이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

입양인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입양은 자녀를 얻는 행복이고 기쁨이며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불편일 뿐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진일보한 복지정책이 마련돼 ‘애덤 킹’이 아니라 국내입양 장애아가 우뚝 서서 공을 던지고 차는 날이 오기를 열망한다.

황수섭(고신대 의학부 교목·호산나교회 입양담당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