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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시카고 불스 재건 가능하다

입력 | 2001-04-16 11:25:00


NBA 팬들은 현재의 시카고 불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

과거의 영광을 깎아 먹는 팀? 아니면 미래가 기대되는 팀? 원정 25연패, 그리고 어쩌면 13승69패로 2년 연속으로 프랜차이즈 최저승 기록을 다시 쓰게 된 이들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해 보인다.

과연 시카고의 재건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지금 상황만을 보면 "No"라고 대답할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엘튼 브랜드는 다음 시즌이 끝난 후 시카고의 재계약 제안에 뭐라고 응답할까 ?

사실, 많은 이들이 불스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데는 제리 크라우스 단장의 책임이 크다고 비난하고 있다. 스카티 피픈 역시 "크라우스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할 사람"이라며 분개한 바 있다. 비록 크라우스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 어렵게 결정한 일"이라고 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20년 전의 불스를 돌이켜보면 크라우스의 선택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7년 뒤 또다른 시카고 왕조 (dynasty)를 만나보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꼴지 팀 시카고 불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80년대 중~후반의 시카고 팬들이 불스 때문에 답답해 해 본 적이 있을까? "

90년대 들어 NBA를 지켜보기 시작한 팬들이라면 아마 "마이클 조던이 있는데 그럴 일이 있을까?"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려 생각해서 조던이라는 불세출의 스타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하지 못하는 이들은 어쩌면 그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터론토 랩터스는 빈스 카터 혼자로는 결코 강팀이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 팬들도 조던의 뛰어 남은 인정하면서도 기대 이하의 성적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을 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면에서 크라우스는 시카고 시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크라우스가 정식으로 불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85년 5월 26일 이었다. 같은 날 시카고는 로드 던 단장을 해고했고, 크라우스는 농구단 운영관련 부회장으로 고용되었다.

조던이 합류한 84-85 시즌 이전까지 불스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이들은 81년 드래프트에서 올랜도 울리지를 지명, 아티스 길모어와 함께 팀의 중심으로 키워나가고자 했으나 불스는 좀처럼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위 팀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지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감독 교체도 잦았고, 선수들의 트레이드도 많았다. 81-82 시즌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12명의 선수 중 MJ가 합류했던 84-85 시즌까지 남아있던 선수는 겨우 3명 뿐 이었다. 그리고 84-85 시즌, 대부분의 선수가 지금의 불스처럼 경력이 5년을 넘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상황은 지금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큰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의 "젊은 선수"들은 대학 4년 정규과정을 마친 2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진짜 '젊은' 선수들이었다는 것. (지금의 젊은 선수들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즉 '어린' 선수들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 그리고 엘튼 브랜드가 아닌 MJ 가 새로운 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80-81 시즌에 45승 37패를 기록하며 77년 이후 처음으로 PO에 진출한 이후, 불스는 조던 합류 전까지 줄곧 하위권만을 맴돌았다.

▽ MJ + 제리 크라우스의 시대

85-86 시즌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90년대 시카고 '영광의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한 시즌이었다.

5월 26일, 크라우스의 불스 합류 이후 이들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 보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7월 8일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대부' 텍스 윈터를 영입했고, 루키 찰스 오클리와 계약하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였다.

시즌 개막까지 트레이드는 6건. 그리고 시즌 중에도 2번의 트레이드가 더 있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즌이 끝나기 무섭게 크라우스는 스탠 알벡 감독을 해고, '젊은 피' 덕 콜린스 코치를 수혈했다. 그리고 시즌 개막까지 무려 11건의 트레이드 및 선수 이동이 있었다. 시즌 중에도 6차례의 트레이드가 있었다.

지금의 움직임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NBA 저널리스트 피터 메이 (Peter May)씨가 저술한 "The Last Banner" 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책은 85-86 시즌, 보스턴 셀틱스의 마지막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발간되었던 책임에도 불구, 조던의 63득점과 불스의 이야기가 거의 한 챕터 - chapter -에 걸쳐 소개되고 있다.)

크라우스는 메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처음 시카고에 왔을 때, 사실 마음에 들었던 선수는 세 명뿐이었다. 마이클, 데이브 코진, 라드 히긴스 정도? 다른 아홉 명의 선수의 실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도 뛰어난 선수들이었지만, 팀 컨셉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팀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들이었다. 결국 이들을 모두 내보내고, 내가 구상하고 있던 팀을 구상하는데는 무려 4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크라우스가 선수 구성을 모두 마친 4년과 함께 한 시즌 뒤, 시카고는 LA 레이커스를 꺾고 첫 타이틀의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크라우스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이용했다. 당시 가장 주된 트레이드는 바로 주요 선수를 내주고 미래의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는 트레이드, 혹은 현금을 주고 주요 선수를 트레이드 해오는 것이었다. 그는 샌앤토니오 스퍼스에 십만 달러를 내주고 93년 피닉스 썬스와의 파이널 6 차전에서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려 주었던 슈터 잔 팩슨을 데려왔다.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접전으로 유명해진 시카고는 87년 드래프트에서 확실한 초석을 잡을 수 있었다. 바로 스카티 피픈과 호러스 그랜트를 영입한 것이다. 87-88 시즌에도 9명을 방출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받아들이며 팀 시스팀을 조정해간 이들은 88년 조던-크라우스의 재계약, 그리고 윌 퍼듀, 크레익 하지와의 계약으로 또다른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 도약의 시작

87-88 시즌, 50승 32패 (센트럴 디비젼 2위)의 성적으로 4년 연속 PO 진출에 성공한 이들은 1라운드에서 마크 프라이스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3승 2패로 꺾고, 80-81 시즌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준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불스는 '배드 보이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오랜 라이벌전을 시작해야 했다.

비록 시카고는 1승 4패로 물러나야 했지만, 이들에게 있어 87-88 시즌은 매우 의미가 깊었던 시즌이었다. 조던-피픈-그랜트 트리오가 구축 된 첫 시즌이었으며, 크라우스는 , 조던은 MVP-올해의 수비수-ALL NBA 퍼스트팀-디펜시브 퍼스트팀-올스타 MVP를 독식했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종종 대립을 보여온 오클리를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하며 빌 카트라잇을 영입했다. 크라우스는 빌 카트라잇이 큰 수치를 올려주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수비와 팀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었던 장신 센터라 판단했다. 당시에도 시카고 언론은 조던의 보디가드이자 팀의 리딩 리바운더였던 오클리를 보낸 것을 놓고 많은 지적을 했지만, 그들은 얼마안가 그들의 실수를 인정해야 했다.

89년 7월 10일, 필 잭슨과 짐 클레먼스를 감독-부감독으로 합류시키고, B.J. 암스트롱을 지명한 시카고는 이후 첫 타이틀을 따낼 때까지 꾸준히 벤치 멤버를 트레이드. 팀 컨셉에 맞춰나갔다.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보는 바와 같다.

비록 트라이앵글에 대한 미련과 조던, 피픈 등 스타 플레이어들과의 갈등으로 악명이 높아지긴 했지만, 크라우스의 'Building' 스타일은 변함이 없다. 재건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2년이 지났다. 다른 수퍼스타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인내를 갖고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

[인터뉴스 리포트] 손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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