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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나홀로 어린이' 위험 무방비…작년 안전사고 3배 급증

입력 | 2001-04-17 18:33:00

답십리초등학교 정문 옆 불법주차 차량들


《지난달 27일 오후 6시경 서울 성북소방서는 아이들이 집 안에 갇혀 있다는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는 각각 네 살과 한 살된 남매가 갇혀 있었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시 출동한 구조요원은

“‘나홀로 어린이’들이 늘면서 이런 ‘문개방’ 출동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무관심과 부주의로 학교와 집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17일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 안전사고로 119구조대와 구급대가 출동한 횟수가 2816건으로 전년보다 3배정도 늘어났다. 이 가운데 부상한 어린이가 1518명에 달했고 숨진 어린이도 4명이나 된다. 특히 방문이 잠긴 채 집에 남겨진 어린이를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횟수는 1875건으로 전체의 66.6%나 차지했다. 이는 99년보다 30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부모들이 일을 나간 사이에 집에 남겨진 ‘나홀로 어린이’가 늘면서 어린이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초등학생의 안전을 위해 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를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스쿨존’도 경찰과 행정당국의 무관심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변질됐다.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에 따르면 1995년 9월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 생긴지 5년이 넘었으나 규칙에 맞게 스쿨존이 운영되는 곳은 극히 드물다. 서울시도 스쿨존의 관리 기관이 경찰서와 자치단체로 나뉘어 있어서 효율적인 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시인했다.

1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답십리초등학교 앞. 학교 주변은 상가가 밀집돼 있어 교통량이 많고 학교의 개보수공사에서 나온 폐기물과 건자재가 인도를 가로막고 있어 스쿨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로변에서 학교쪽으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학교앞 천천히’라는 노면표지가 있었으나 페인트가 거의 벗겨진 상태여서 운전자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정문앞에 있는 ‘학교앞’이라는 가로표지판은 공중전화 부스에 가려져 있었다.

하교하는 자녀를 직접 데리러 온 학부모 김모씨(38·여)는 “매일 등교시간에 학부모로 구성된 녹색어머니 12명이 나와 있지만 지나다니는 차들이 많아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들이 교통 지도를 하지 않는 하교시간에는 아이들이 인도에 놓인 건축 자재물과 차를 피해 ‘곡예 보행’을 해야 한다.

국제아동보호단체인 유니세프(UNICEF)의 200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 가운데 교통사고로 인한 아동(1∼14세) 사망률이 선진국에 비해 4∼5배 가량 높다. 특히 1999년 사고로 숨진 어린이 1467명 가운데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697명으로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의 허억(許億)소장은 “어린이들의 교통 안전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학교 주변에 안전 시설과 표지판을 강화하고 ‘1학교 1전담경찰제’를 도입해 등하교 시간만이라도 스쿨존에서 불법 운행을 하는 차량들을 집중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maru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