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라.”
이건 너무 고전적인 방법이다. 책을 읽지 않고 독후감을 쓰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통째로 베낄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와서 그 내용을 함께 토론한다.”
책에 대한 이해와 표현 훈련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강의실의 학생이 열 명을 넘어서면 사실상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컴퓨터 파일로 제출하라.”
컴퓨터의 검색기능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방법이다. 파일 내용까지 검색 가능한 컴퓨터를 이용해 독후감 베끼기를 감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의심하며 구절구절마다 검색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선생님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는 선생님들의 고민이 심각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 누가 뭐래도 이것은 학습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컨텐츠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보통신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결국은 좋은 컨텐츠를 많이 가진 자가 승리하리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터넷 관련 업체들은 이미 컨텐츠 확보를 위한 전쟁에 돌입해 있다. 문제는 정보통신기술과 달리 컨텐츠는 짧은 시간에 축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책읽기는 컨텐츠 축적의 기반을 마련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자, 여기 이번 학기 강의와 관련해 여러분이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이 있습니다. 최소한 두 권 이상의 책을 골라 읽으십시오. 많은 책을 읽을수록 좋습니다. 책을 읽으며 주목할 만한 구절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여백에 적으십시오. 그 ‘책’을 제출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물론 제출한 책은 검토 후 돌려줍니다.”
최근 대학가에 등장한 이 방식은 정말 불편하고 미련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 ‘단순 무식’한 방식은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컴퓨터 시대에 컴퓨터의 복사기능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을 읽은 후 따로 정리하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책을 ‘정말로’ 읽어야 하고, 선생님들은 밑줄을 긋고 자기 의견을 적은 그 책을 훑어보며 학생들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학생들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책이란 마구 밑줄을 그으며 읽는 버릇을 들여서는 안 될 귀한 것이며,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좋은 책을 골라 숙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책은 가장 흔한 물건 중의 하나다. 책에 따라 읽는 방법은 달라야겠지만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숙독의 습관보다는 많은 자료 속에서 빠른 시간 내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직접 책을 사서 책장을 넘기며 끝까지 읽었을 때의 기쁨, 그 기쁨을 경험하도록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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