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장하고 있는 우표 가운데 가장 아끼는 것이 오늘(19일)로 발행 40주년을 맞는다. 이 우표는 디자인상을 받을 만큼 예쁘지는 않다. 1945년 이후 발행된 6000여종의 남북한 우표 중 민주주의를 위한 한국인들의 투쟁을 포착한 유일한 것이다. 바로 ‘4·19 학생혁명 1주년 기념우표’(사진)다. 동아일보에 게재됐던 사진을 복사해 만든 것으로 팔을 서로 끼고 거리를 달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한국의 민주전통 아시아 최고▼
이 학생들은 결국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을 하야시켰다. 이 대통령은 한국 지도자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이해한 첫 세대(그가 프린스턴대에서 공부할 당시 스승은 우드로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였지만 불행하게도 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4·19 직후의 한국 민주주의는 비록 단명에 그쳤으나 4·19는 한국 학생들을 국가의 양심세력으로 정립시켰다. 그로부터 27년 뒤인 87년 한국의 학생들은 그들이 성공적인 민주화 과정의 촉매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87년 5월 대학생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나는 운 좋게도 그들의 민주화 투쟁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누린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내 또래의 학생들 모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최근 신문을 훑어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느낌이다. 국회는 늘 교착상태에 있고 대통령의 인기는 최저 수준이다. 지역감정은 여전히 심각하고 언론 편집인들은 포위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교육과 의료 분야는 개혁을 필요로 한다.
얼마 전 서울에서 출간된 한 정치관련 서적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97년 경제위기의 탓으로 돌리며 “민주체제의 붕괴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상황은 정말 그렇게 나쁠까?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4·19가 있었던 60년 봄 이후 얼마나 진전을 거뒀으며, 다른 아시아국가들보다 얼마나 잘 사는지를 잊고 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은 전체주의적 통치로부터 변화를 이룬 모범적인 사례를 보인 나라라고 말한다. 무혈 민주화를 이룬 것은 결코 작은 업적이 아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97년 경제위기 등과 연관이 돼 있지만 군부와 정보기구에 대한 문민의 우위를 확립했다. 하나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군사 쿠데타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다.
한국의 선거는 미국만큼 자유롭고 공정하며 미국보다 더 정확하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 독재정권이 정적으로 여겼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 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부에선 그의 당선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체됐던 경제개혁을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
한국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웃나라를 돌아 보라. 일본에서는 경제보다 더 희망이 없는 것은 정치 시스템이며 한국이 내각제를 채택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홍콩의 민주주의를 거의 종식시켰다. 대만 입법원은 주먹다짐과 몸싸움에선 한국 국회를 능가한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는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국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민주국가로 대두했다.
▼3김 이후 지도자에 기대▼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한국인들은 특정 정치인을 손가락질하는 대신 스스로의 사고 방식을 바꾸는 데 주력해야 한다. 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으며 한국인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진정한 물음은 이제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더욱 굳건히 할 능력이 있는 지의 여부다. 그들은 3김씨 세대처럼 행동할 것인가, 혹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 행동할 것인가. 그들은 이에 관한 영감을 얻기 위해 이제 40년된 우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피터 벡(미국 한국경제연구원 국장)beckdong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