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땡 학교종소리를 기억하시나요. 경기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바닷가에 자리잡은 ‘덕포진 교육박물관’에선 누구나 땡땡땡 학교종을 쳐볼 수 있습니다. 그 뿐인가요. 겨울이면 배불뚝이 석탄난로 위에 올려놓았던 찌그러진 양은도시락, ‘셈본’‘산수’와 같은 정겨운 이름의 교과서, 또 수우미양가로 매겨진 통지표도 만날 수 있지요. 이곳 3학년 2반 여선생님은 학생들(어른 관람객 포함)이 오면 꼭 풍금을 치면서 동요를 부릅니다. 하지만 일어서서 나갈 때는 남편인 관리인(사실은 설립자)의 손을 잡아야만 합니다. 앞이 안보이거든요. 이 교육박물관은 뜻하지 않게 시력을 잃어 교직을 떠나야했던 아내를 위해 96년 남편이 지은 곳이랍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실의에 빠져있던 아내에게 남편이 약속했다는군요. “당신, 학생들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줄께.” 》
기자도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관장 이인숙(李仁淑·54)씨의 낡은 풍금소리에 맞춰 ‘고향의 봄’을 불렀다. 얼마만에 불러보는 동요인지, 어린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황토빛 생활한복을 입은 남편 김동선(金東銑·60)씨는 기자가 노래를 부르는 중에도 책상 줄을 맞추고, 주판알 먼지를 닦느라 분주했다. 그리고는 아내와 기자를 위해 커피를 준비해왔다.
“독일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남자분이 엊그제 우리 박물관을 와서 보더니, 교사부부가 가장 평범한 것들을 가지고 대단한 보물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기억엔 생생한데 막상 찾으려면 구경도 하기 어려운 학교관련 자료들은 여기 다 있다고 봐야지요.”
이씨는 교과서부터 손톱만한 배지까지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는’ 남편의 습성 덕에 이같은 교육박물관이 만들어진 거라고 말한다. 그것도 틀린말은 아니지만 박물관 탄생의 직접적인 배경은 이씨의 실명이었다.
1990년, 버스에 부딪혀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찧었다. 정신이 아뜩했다.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자꾸 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교과서를 보면 글자가 출렁거리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가 하면 벽에 부딪히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시신경을 다친 탓이었다. 학교에선 담임을 맡지 않고 음악수업만 하며 버티면서도 어떻게든 남편이 모르기를 바랬다. 당장 그만두라고 할까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되풀이되자 김씨가 캐물었다. 다음날로 사표를 쓰게 해서 아내의 학교 교장실로 찾아갔다. 아내는 몹시 우울해했다. 김씨는 “나도 교직에 있었지만 교직에 대한 애정은 못따라갈 정도”라고 했다. 92년 학교를 그만둔 이씨는 몇번씩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을 결심을 하기도 했다.
“남편과 애들 학교간 뒤 혼자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자꾸 죄와 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 여자는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저렇게 벌을 받나 하고 남들이 손가락질을 할 것 같더라구요. 고통스럽다기 보다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행복한 사람이야”하고.
“이 녀석아. 한발자국도 내 힘으로 내딛을 수가 없는 사람한테 무슨 행복이냐?”
“아니예요. 우리들 도시락 반찬까지 싸주는 아빠가 있잖아요. 난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다음에 한번도 아빠가 찡그리는걸 못봤어요. 얼마나 대단한 아빠예요.”
자신이 어린 아들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은 것, 부족한 것만 가슴아파하던 이씨였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가진 것은 잃은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친구들을 만나서도 궂은 소리만 늘어놓았지요. 그러다보니 내가 나타나면 분위기도 우울해지는 거예요. 어느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상에 태어나서 빛과 소금은 되지 못할지언정 어두움만 끼쳐서야 되겠느냐 싶더라구요. 그 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밝게 지내려고 노력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 박물관에 와서 날 만난 사람들도 희망을 얻어 가나봐요. 앞이 안보이는 사람도 저렇게 명랑한데 우리도 힘을 내자, 하구요.”
절망에 빠져있던 아내에게 “내가 학생들을 만나게 해줄테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달랬던 남편은 그 사이에 부지런히 작업을 계속했다. 사적이 즐비한 고향 김포에 학생들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수련원을 지을 생각이었다.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아내의 퇴직금을 털어넣고 나중엔 교사인 자신의 명예퇴직금까지 쏟아부어 건물을 지었다. 마침 집안에 발디딜 틈도 없이 모아놓은 교육자료를 본 이가 “수련원 보다는 박물관이 어떠냐”고 조언을 해주었다. 교육박물관은 96년 그렇게 문을 열었다.
부부는 낮에는 박물관서 손님을 맞고, 밤에는 마당을 돌아 한곁에 마련해둔 황토방에서 살림을 한다. 김씨가 ‘주방장’노릇한 지 10년이다. 아내가 찌개를 데운답시고 냄비받침째 불 위에 올려놓아 화재를 낼 뻔 한 일 이후로 남편은 가사일을 도맡았다. 아내의 손발이 돼주는 것은 물론이다.
“고맙지요. 처지를 바꿔서 내가 저사람이고 저사람이 나라면, 나는 남편이 내게 해주는 것 만큼 못할 것 같아요. 젊어서는 남편이 뭐든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다고 많이 싸웠는데 그래서 저사람은 앞이 안보이는 마누라도 버리지를 못하는가 봐요.”
하지만 이씨는 남편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한번도 안해봤다. 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사실 부부라는 게 뭔가. 말은 안해도 마음으로 느끼는 게 부부 아닌가. 살다보면 비오는 날도, 바람부는 날도 있는 법. 그사람의 아픔까지 껴안는 것이 사랑아닌지.
“그래도 이번 기회에 저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며 이씨는 민해경의 ‘당신과 나’를 불렀다. “예전엔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 줄 몰랐어요.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아서 지나온 날 돌아보다가 문득 그대의 상처가 나보다 큰 걸 알았죠.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소중함을 잊었나봐요…”
“나는 내가 앞이 안보이는 것만 생각했지, 나로 인해 저사람이 받는 고통은 생각을 못했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내에게 김씨는 말했다. “나는 외려 저사람이 고마워요. 내가 앞이 안보인다면 나는 저사람처럼 이겨내지 못할 것 같거든. 하루는 저사람이 ‘여보, 난 꿈을 꿀 때가 제일 좋아’하는데 가슴이 미어지더라구. 젊어서 보던 장면이 그대로 보인대. 내 얼굴도 젊었을 때를 그대로 기억하나봐.”
김씨는 아내의 아픔을 느껴보려고 밤에는 일부러 불을 켜지 않는다. 이리저리 부딪힌 통에 그의 손등이며 무릎엔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한번씩 ‘장애 체험’을 하고나면 아내가 더욱 대단해보인다.
이렇게 사이좋은 부부도 의견이 맞서는 부분이 딱 한가지 있다. 바로 교육에 대해서다. “요즘 교실붕괴가 심각하다는데…”하고 기자가 슬쩍 운을 띄웠더니 이씨는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반면, 김씨는 “그래도 모든 키(Key)는 교사가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아내의 말을 잘랐다.
마침 20일은 장애인의 날. 이씨는 ‘시련이란 딛고 일어서라는 뜻으로 하느님이 주신 디딤돌’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덕포진 교육박물관도 없었을 터이므로.
“남편은 나를 위해 박물관을 지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남편이 박물관을 더 좋아해요. 남을 위해 한 일이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위한 일로 돌아오나봐요. 장애인도…비장애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생겨난 게 아닌가 싶어요. 높은 사람, 행복한 사람에게 잘해주면 누가 고마워하나요. 행복이란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데서 생겨난다는데, 우리같은 장애인을 도와준다면 진정한 행복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만난사람=김순덕차장yuri@donga.com
▼덕포진 교육박물관은…▼
‘덕포진 교육박물관’ 1층 한켠엔 3학년 2반 교실이 마련돼 있다. 이인숙씨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담임반이 3학년 2반이었기 때문.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교실에서 수업부터 받는다. 김동선씨가 인근 사적지와 역사 사회 자연 등을 아우른 ‘통합교과’를 20분 정도 강의하고, 이인숙씨는 풍금을 치면서 10분쯤 음악수업을 한다.
1층은 인성교육관이다. 향토애, 전통문화, 세계화 등 6가지 테마에 맞춰 다양한 전시물이 비치돼있다. 얼마든지 만져봐도 되는 열린 공간. 낡은 풍금 좀 건드렸다고 달려올 경비원도 없다.
2층엔 1905년부터 최근까지의 교육변천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교육사료관이 있고 3층은농사도구와 생활용품이 전시된 농경문화교육관. 한 40대 남자관람객은 이곳에 놓인 계란꾸러미를 보더니 “어머니가 날 업고 계란팔러 다니다가 넘어져 깨뜨렸다며 우시던 기억이 난다”며 엷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개관시간〓오전10시∼오후6시반 연중무휴 (031―989―8580)
△입장료〓어른 1500원 어린이 1000원
△찾아가는 길
1. 서울에서〓행주대교 남단 김포 강화방면 48번 국도를 따라가다 김포를 지나 누산3거리에서 좌회전, 352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덕포진 약암온천 등이 가까워지면 안내표시가 나온다.
2. 인천에서〓강화방면 30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가 양곡에서 352번 지방도로로 들어간다.
3. 대중교통〓서울 지하철 5호선 송정역에서 시외버스 6번을 타고 양곡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탄다. 덕포진 입구에서 하차, 표지판을 따라 20분쯤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