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술을 빼놓고는 대학생활을 논하지 못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일상적인 행사나 모임의 끝이 술자리로 이어지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됐다. 술자리 참석을 곧 대인관계 시작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지만 즐기는 것을 우선시 하는 요즘의 풍토도 무시할 수 없다.
막걸리를 중심으로 소박한 음주문화가 형성되었던 7·80년대에는 요즘처럼 아르바이트 등 용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고향생각 절로 나는 막걸리 한 사발이 그 어떤 것보다 달콤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교수에게 주도를 배우기도 하고 '술'이 스승과 제자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끈이 되는 등 어엿한 대학문화로 자리잡기도 했다.
'늦은 밤 멀리 보이는 산동네 불빛/ 내려오다 보면/ 술에 취한 후배들 집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셋이 누워도 좁은 자취방까지/ 어깨를 부축하고/ 등 두들겨주며 함께 고통스러워하던 밤/ 곤히 잠든 후배의 바지를 밤새 빨아 말리던/ 그 때는 정말 마음도 여렸다’
신동호 시인의 시 '언제 다시 오르려나'(겨울경춘선)를 보면 선·후배 사이를 돈독하게 했던 그 시절의 '술'과의 추억을 짐작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지만 현재는 노래방이 보편화되고 소주방·호프·단란주점·구이집 등 여러 종류의 술집이 줄지어 생기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잔디밭 문화'라고 불렸던 잔디밭에서의 술자리 모습이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또 경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스레 주류의 고급화가 이뤄져 소주·막걸리를 마시던 과거와 달리 맥주가 보편화되고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양주를 마시기도 한다.
즉 시대가 변하면서 과거의 '낭만'이 소비적인 문화로 변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형적인 변화는 술자리가 가지는 의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술을 왜 마시는가'라는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사회가 억압되고 분위기가 위축되었던 7·80년대에는 사회에 대한 근심·걱정이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정작 술자리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최환 교수(영남대 동양어문학부)는 "그 당시에는 빈번히 계엄령이 내려지는 상황이라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 심적 부담이나 동요가 생겼지만 술자리에서 정치적 사안을 공론화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 "물론 사회적으로는 억압되어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앞을 내다보는 토론과 논쟁을 펼쳤으며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자리가 많아 질적인 대인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술이 대학 안에서 공동체문화를 지탱하는 하나의 바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던 것.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과거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물론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 보다는 신변잡기적인 잡담식의 자리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과거에는 '술=인간관계'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술을 매개로 내실있는 인간관계가 맺어지기도 했지만 최근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술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신재화군(영남대 국사4)은 "생활방식과 사고가 파편화돼가는 것이 술자리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삶에 대한 의욕없이 그냥 마시는 술, 즐기는 술에만 국한된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술을 마시기 위한 자리이다 보니 내용은 없고 형식만이 남아있는 상황이 되었으며 자연히 공동체문화의 일부분이었던 술자리의 본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것.
김동균군(영남대 철학2)은 "즐기는 것이 대부분이라 고민같은 진솔한 얘기를 할 기회가 많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술을 마시는 양은 줄어들고 있다. 주류의 변화도 있지만 환영식 등의 자리에서 사발식이라고 해서 한꺼번에 과량을 마시는 문화 아닌 문화(여전히 잔재가 남아있지만)가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최미경양(영남대 국사2)은 "환영회나 동문회를 가도 사발식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억지로 권하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바뀌며 술자리의 모습도 많은 변화과정을 거쳤다.
'언제가 더 좋았다'는 식이 아니라 '이건 좋았어'라는 생각으로 예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술자리는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술만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수반되는 자리로 거듭났으면….
공동체적 문화의 실종으로 대학문화의 존립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술'이 단지 쾌락을 위한 자리가 아닌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매개로 자리잡길 바라며 내일의 술자리를 기대해본다. (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