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1주를 보낸 메이저리그의 화두는 '저팬'이다. 노모(보스턴)가 부진을 씻고 볼티모어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기적의 공을 던지더니 이치로(시애틀)는 텍사스전 결승 홈런으로 미국을 경악하게 했다. 그것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공-수-주 3박자를 갖췄다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의 맞대결이 벌어진 경기에서 였다. 시애틀은 로드리게스의 모값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놓아준 대신 일본에서 이치로를 수입한 터. 그런데 맞대결에서 이치로가 결승 홈런을 때려낸 것이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마무리 투스 사사키(시애틀)은 연이은 세이브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치로의 성공은 이미 예견된 바 있다 그러나 노모가 재기하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별로 없다. 다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아나운서 어니 하웰씨 정도가 "노모가 옛 실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했을 뿐이다. 하웰에 따르면 올 시즌 스트라이크존(사실 높아졌다기보다는 룰 북에 있는 대로 돌아간 것이다)이 높아짐에 따라 타자 겨드랑이 근처보다 약간 낮은 공(하이 패스트볼)을 잘 던지는 노모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노모 특유의 폭포수 포크볼이 예전에는 볼로 선언되었지만 올해엔 대부분이 스트라이크로 처리한 영향이 컸다. 노모로서는 자신의 주무기인 직구와 포크볼을 폭 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모는 결국 높아진 스트라이크존의 최대 수혜자라고나 할까.
각설하고, 일본 야구의 '진주만 침공'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침공이 전혀 싫지 않다. 오히려 흐믓하기만 하다. 일본인 출신 선수들이 잘하면 잘할수록 돈지갑은 두둑해지고 그들의 꿈인 메이저리그의 세계 전파는 가속화하기 때문.
세계로 뻗어가는 미국 야구의 실상을 살펴보자. 시애틀은 일본의 최고 스타 이치로를 영입하면서 NHK와 천문학적인 액수의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이치로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미 스프링 캠프 때부터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은 물론, 관련 상품의 판매 또한 상상 이상이다. 시애틀은 중국 본토에 야구 아카데미를 설치했고, 밀워키는 야구 불모지인 독일 출신 선수와 최근 계약을 마쳤다. 마이너리그 유망주 중에는 반드시 대만 출신 선수들이 들어간다. 한국의 수많은 유망주도 미국으로 빠져나갔다. 이르면 2003년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출신국별로 '헤쳐모여'한 뒤 경기를 치르는 야구 월드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의 '전 지구화'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같은 현상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이 미국 내에서조차 제기되고 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한 칼럼니스트는 '미국이 얻으면 일본은 잃는다. 이치로가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를 떠나 자국 리그에서 잃은 팬들은 그 수를 따지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로는 일본 야구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러한 지적이 비단 미-일 야구에만 국한된 것일까. 이종범의 이적으로 텅 빈 광주구장, 박찬호의 선발경기를 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엄청난 주계권료 등 비교적 시장이 안정되어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야구 시장은 초토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병현, 박찬호 대 스즈키, 노모의 한-일 경쟁. 커다란 미국 땅에서 벌이는 동양인들의 메이저리그 활약 다툼은 자국 내 팬들에게는 잠시의 위안거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확대로 인한 한국 야구의 축소를 세계화의 뒤안길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큰 후유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