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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이슬람과의 대화]축복-저주의 '오일 머니'

입력 | 2001-04-22 18:42:00


페르시아만을 중심으로 한 중동 지역은 이슬람 문명의 본산이다.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바레인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등 중동 국가는 또 다른 국제적 공통 이슈를 갖고 있다. 바로 석유다.

세계 석유생산량의 40%, 국제 거래물량의 55%, 가채매장량의 80%가 있는 중동 지역을 빼놓고 석유, 나아가 현대 문명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자동차와 비행기 연료뿐만 아니라 도시가스 옷 신발 타이어 아스팔트 의약품 필름 등 현대인에게 불가결한 모두가 석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富의 편중 심화-사회발전 장애도▼

그렇지만 석유는 중동 이슬람 국가에 축복이자 저주였다. 석유개발과 생산을 장악하려는 구미 열강의 싸움터로 변해 오랫동안 식민지배와 착취로 신음했던 것이다. 100만명이 숨진 전쟁을 치렀던 이란과 이라크는 원유 매장 지역을 놓고 아직도 분쟁 중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유전지대 점령으로 터진 걸프전은 이슬람교 사상 ‘치욕’이었다. 이슬람 국가간 분쟁으로 성지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교도의 나라’ 미국의 무장군대와 전투기가 둥지를 튼 것이다. 이란 이슬람 혁명 등으로 중동에서 힘을 상실했던 미국은 중동석유 지배권을 다시 장악했다.

중동국가는 왕정 등 권위주의적 국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막대한 오일머니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사회발전의 장애가 되기도 한다. 쿠웨이트만 해도 인구 63만명 중 23만명을 차지하는 아랍계 이민자의 삶은 보잘것없다. 도시 외곽의 허름한 주거지와 사막의 천막에 사는 베두인족에게 오일머니는 무력해 보인다. 호화 백화점에 값비싼 전자제품, 보석이 넘치는 반면 도시의 한편에는 싸구려 헌옷 시장이 있다. 아랍 복장만 보고는 거지인지, 억만장자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이 산유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세계를 나눠 갖고 있던 거대 석유회사의 손에서 석유 가격 통제권이 산유국으로 넘어가게 된 극적인 계기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란 이름의 가격 카르텔 기구 등장이다. 아랍민족주의 주창자였던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1957년 ‘혁명의 철학’이란 저서에서 “석유는 현대문명의 중추로 석유가 없어지면 현대문명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란 말로 ‘석유 무기화’ 가능성을 설파했다. 이런 배경 아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둥 중동 산유국 네 나라와 남미의 베네수엘라(이슬람 국가가 아닌 유일한 회원국)가 1960년 9월 14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OPEC 창립 모임을 가졌다. OPEC회원국 석유장관회의 때가 되면 지금도 세계의 신경은 온통 오스트리아 빈, OPEC 사무국 회의실에 몰린다. 감산이냐, 증산이냐에 따라 세계 석유시장의 풍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감산이 가져오는 가공할 영향은 이미 입증됐다. 73년 10월 7일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전쟁에 들어가자 아랍 산유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등에 금수를 결정했다. 이어 사상 유례없는 유가파동이 일었다. 73년 10월 배럴당 3.01달러(이하 아라비안경질유 기준)였던 국제유가는 두 달 뒤인 74년 1월 11.65달러로 4배 가까이 폭등했다.

석유회사 힘에 눌려온 중동산유국은 자신감을 얻고 속속 생산설비와 개발권을 국유화했다. 리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등이 76년까지 100% 국유화를 달성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 때도 세계에 다시 석유 위기가 닥쳤으며 지난해에도 세계 석유시장은 심한 몸살을 치렀다.

유가 폭등의 주범이란 비난에 대해 OPEC는 “환경오염을 내세워 석유제품가의 70%가 세금이 되도록 해놓고 손쉽게 재원을 챙기는 소비국 정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비난을 의식해 ‘OPEC 펀드’를 만들어 현재 40억달러 이상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일대 저개발국에 지원하고 있다.

▼개혁 발목잡아 경쟁력 저하 초래▼

오일머니는 중동 국가에 대규모 사회간접시설을 빠른 시일에 갖출 수 있게 해준 성장의 원천이었다. 최근 들어 대규모 사업 대신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부채를 갚는 등 신중한 씀씀이를 보이고 있다. 석유에만 의존하는 재정의 불안정 때문이다.

걸프전 종전 이후에도 여전히 불안한 중동 정세 탓으로 최근 10년간 중동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6%에 그쳤지만 지난해 OPEC의 감산 정책으로 국제유가가 크게 올라 경제는 활력을 되찾고 있다. 지난해 유가상승으로 중동국가는 약 680억달러(약 90조원)의 추가 수입을 챙겼다. 국가 통제 체제 아래 모든 의사결정이 중앙집권화된 아랍 중동국가의 시스템은 경쟁력이 취약해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오일머니’라는 소방수가 등장하면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이고 결국 개혁요구는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미국 옵서버지의 에너지전문가 앤서니 샘슨은 저서 ‘석유를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에서 국제정치상 석유 문제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이렇게 강조한다.

“석유를 둘러싸고 국제협정이 생겨난다면 그것은 ‘세계정부’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며 이제까지 세계 각지에서 분쟁의 도화선이 되어온 석유는 앞으로 세계 평화를 촉진시키는 윤활유가 될 것이다.”

hanscho@donga.com

중동 국가 경제 개황(단위% ,2000년은 추정치)

 

GDP성장률

인플레

국가

1999년

2000년

1999년

2000년

바레인

4.0

5.2

―1.3

2.0

카타르

0.2

4.3

2.1

1.0

아랍에미리트

2.5

5.0

4.0

4.5

쿠웨이트

―2.4

4.0

3.0

3.0

오만

―1.0

4.7

0.4

―0.8

사우디아라비아

0.4

4.0

3.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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