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의보재정 위기에 대해 정부와 시민단체의 책임론을 제기한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3월21일자 A7면 '수요프리즘-의약분업 전사들 어디 갔나'에 대해 건강연대 및 참여연대 등이 김동춘 교수를 통해 반론을 제기해왔다.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이 글을 싣는다.》
송호근 교수는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을 패자들의 전쟁 이라고 명명하면서 정부와 시민단체를 공격해 의사들의 박수를 받았다. 송교수가 자신의 글에서 제기했듯이 정부와 시민단체가 의료개혁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기 위해 의약분업이라는 실마리를 잡은 것이 과연 적절한 접근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 관련 사태가 모두가 패배한 전쟁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의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필자의 의사 변호는 사태의 일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각종 조사에서 드러났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지만 의보재정의 파탄 속에서도 동네의원의 수입은 무려 52% 증가했다. 그러나 작년 개원의 주도로 시작한 의사폐업과 파업에서 돌격대 역할을 했던 전공의들은 무엇을 얻었는지 불분명하다. 분명히 최대의 피해자는 과거나 현재나 국민이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보험재정 지출 구조를 정상화하고, 국민 건강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의약분업을 시작했지만 기본적으로 재정지출 계획도 없이 사회정책을 경제정책의 시녀로만 간주해온 개발독재의 마인드로 안이하게 이 문제에 접근한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 사안을 다루면서 시민들의 참여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을 하지 않은 채 약물 오남용 방지, 환자의 알권리 확보와 부패척결이라는 도덕적 명분과 당위론을 앞세우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한 정부의 무원칙한 수가인상이 의보재정 파탄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난 해 지속적으로 경고한 바 있고 주사제 제외 등 의약분업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후퇴시킨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계속 비판해왔다.
의사들의 직업적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건강하게 살 권리보다 더 중요한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국가라는 존재가 부정되지 않는다면 가진 것 을 잃어버릴 위기 때문에 장래의 불안에 빠진 의사들의 처지보다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국민 일반의 고통이 먼저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원인을 따져보지 않고 단지 현재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항변에 편승한 비판들이 모든 개혁적 시도 자체에 찬물을 끼얹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의사들은 정부와 시민단체가 소수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줄줄 새는 보험재정을 그냥 두고 보험재정만 확충하자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 개혁의 개념정립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의 수립이다. 위기상황이긴 하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보건정책, 사회정책이 제대로 수립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