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3일 합의한 자금세탁방지법안에 대해 ‘정치인 이기주의’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라는 입법취지가 여야의 ‘담합’으로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이 법의 규제대상에 정치자금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해 관철시킨 민주당 천정배(千正培) 의원부터 당장 합의된 법안은 자금세탁방지제도를 무력화할 우려가 크다며 재고를 요구하고 나섰다.
천의원은 우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연결계좌 추적권을 주지 않기로 합의한 데 대해 “FIU는 혐의거래 보고를 받은 것만으로는 돈세탁 여부나 돈세탁 방지대상 범죄와의 관련성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돈세탁방지제도는 결정적으로 무력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도 연결계좌 추적권 조항을 삭제한 것은 사실상 FIU의 독자적인 조사기능을 마비시킨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즉 FIU가 불법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모(母)계좌 또는 핵심적인 연결계좌를 발견하더라도 금융기관이 FIU에 신고한 계좌 리스트에 포함돼 있지 않으면 추적을 할 수 없게 돼 불법자금의 흐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천의원은 또 FIU가 정치자금법 위반혐의가 있는 거래정보를 검찰이 아닌 선관위에 통보토록 한 합의에 대해서도 “돈세탁 정보는 범죄정보인 만큼 한시 바삐 수사기관에 통보되고 보안이 지켜져야 한다”며 “수사권도 없고 계좌추적권도 없는 선관위에 통보될 경우 관련 범죄혐의자에게 누설될 우려만 커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여야는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한 각종 금융거래 내용에 대해 금융기관들이 FIU에 통보해올 경우 FIU가 해당 정치인에게 조사 사실을 통보할 것이냐를 놓고 대립해 왔다. 민주당과 시민단체는 조사 사실을 미리 알 경우 불법자금을 은닉할 기회를 줄 수 있다며 ‘통보불가’를 주장해 왔고, 한나라당은 ‘사전 통보’를 주장해 왔다. 국제규약은 당사자에 대한 통보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관위에 통보하도록 한 이번 합의는 사실상 사전 통보를 허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통보 주체가 FIU에서 선관위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선거법에는 선관위가 정치자금을 조사할 경우 해당 정치인에게 소명기회를 주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의 민주당 간사인 함승희(咸承熙) 의원도 “‘정치인 특혜’로 비칠 수 있는 한나라당의 당사자 통보 주장이 사실상 우회적으로 관철됐다”고 인정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여야가 ‘눈가림 입법’에 합의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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