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을 빠져나온 식인마(食人魔) 렉터 박사가 여전히 매력적일까. 10년전 아카데미 5개부문을 석권했던 ‘양들의 침묵’(1991)의 속편 ‘한니발(Hannibal)’이 28일 국내에 개봉된다.
제목이 말해주듯 속편의 무게중심은 식인마인 한니발 렉터 박사. ‘양들의 침묵’이 렉터 박사와 FBI요원 스탈링의 팽팽한 심리적 긴장이 압도적인 스릴러였다면, ‘한니발’은 렉터 박사의 살인, 식인 행각에 초점을 맞췄다.
주로 비주류 영화에서 즐겨 쓰이던 엽기적 살인에 대한 묘사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련된 영상연출 솜씨가 결합된 ‘한니발’은 가장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엽기적 영화로 기록될 만하다.
한니발 렉터의 희생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재력가 메이슨(개리 올드만)은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총기남용 사건으로 좌천될 위기에 처한 FBI요원 스탈링(줄리안 무어)을 끌어들인다. 이탈리아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한니발 렉터(앤서니 홉킨스)는 자신을 좇기 시작한 스탈링과 재회하기 위해 미국에 오고, 끔찍한 살인행각을 잇따라 저지른다.
‘양들의 침묵’의 팬들은 ‘한니발’에서 그 흔적을 찾으려 애쓸지 모르지만, ‘한니발’은 ‘양들의 침묵’을 계승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렉터 박사의 성격. ‘양들의 침묵’에서 철통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렉터 박사가 매혹적인 이유는 육신이 속박되어 있으면서도 정신은 포효하던, 기묘한 부조화 때문이었다.
그는 스탈링(조디 포스터)의 심리를 꿰뚫어보며 지적인 게임을 즐기고, 정중하지만 악마적 본성을 숨길 수 없었던 악의 화신이었다. 반면 ‘한니발’에서 렉터 박사는 자유자재로 돌아다니지만, 그 대신 ‘양들의 침묵’에서 뿜어냈던 사악한 매력을 잃은 채 단순한 살육자로 변질되어 버렸다.
스탈링의 역할이 미미해진 것도 1편과의 차이점. 10년전의 젊은 이상주의자인 스탈링에 비해 ‘한니발’의 스탈링은 무미건조하다. 이는 줄리안 무어의 연기 탓이라기보다 캐릭터 설정 때문인 듯.
1편이 선과 악의 대결이었다면, 2편은 렉터가 상징하는 악과 메이슨이 상징하는 또 다른 악의 대결 구도가 갈등의 중심이어서 스탈링의 역할 자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반면 관객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는 방식은 1편보다 훨씬 과감해졌다. 수입심의 과정에서 빚어진 잡음 때문에 몇몇 장면이 잘 보이지 않도록 어둡게 처리됐지만, 영화 후반부 렉터 박사의 잔인한 식인에 대한 묘사는 장면보다 상황 그 자체가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하다.
광장의 비둘기가 모여 렉터의 얼굴 윤곽을 만드는 첫 장면에서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은 세련됐고 시종 음산한 색조를 띤다. 앤서니 홉킨스의 카리스마도 여전하다. 이야기가 툭툭 건너뛰는 엉성한 면이 있지만 이는 시나리오의 부실함 때문인 듯. 토마스 해리스가 쓴 소설을 데이빗 마멧과 스티븐 자일리언이 각색했다. 음악은 한스 짐머. 18세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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