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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대인관계 클리닉]자수성가의 '그늘 '

입력 | 2001-04-24 18:47:00


◇어린시절 품었던 부유층에 대한 질투심

풍요만끽하는 자녀에 무의식중 분노로 폭발

40대 초반의 김모씨. 그는 아들만 보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나 편안한 환경에서 원하는 건 뭐든 다 가지고 있는 녀석이 학교 성적만큼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정말 공부를 못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전교에서 10등 안에는 늘 드니까. 단 아버지 보기에 그건 말도 안 되는 성적이다.

“10등이 뭡니까? 그 정도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당연히 1등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만일 내가 지금 내 아들녀석과 같은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했다면 아마 대통령도 꿈꾸고 있을 겁니다.”

그는 확신과 분노에 차서 일갈했다.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간신히 상업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동생들 뒷바라지해가며 야간대학, 야간대학원을 수석으로 들어가고 졸업했다.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다 이제는 어엿한 자기 기업을 갖고 있다. 물론 그러기까지, 특히 학교 다니면서 겪어야 했던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아들녀석은 어떤가? 턱없이(?) 좋은 환경에서 아무 근심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된다. 전교 수석? 만약 자기였다면 당연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10등 안을 맴돌고 있다니, 어떻게 용납하란 말인가. 한번 화가 폭발하면 아들에게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아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그건 그가 아들을 무의식 속에서 경쟁상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고생하며 학교 다니던 시절, 풍요롭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품었던 질투심과 적개심이, 바로 그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아들에게 전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부모에게 갖고 있던 분노조차도 아들에게 향했다. 감히 부모는 미워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왜? 내가 낳고 기르니까. 그들에게 투자되는 모든 것은 내 것이니까.

그는 이런 분석에 처음에는 펄펄 뛰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마음속에 분노와 피해의식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직도 무의식 속에는, 사랑 받고 싶은 아이였으나 한번도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한 조그만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음을. 물론 그 후 아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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