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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엽의 이미지로 보는 세상]日 기성세대와 슬럼프 세대

입력 | 2001-04-24 19:08:00


◇일본 기성세대와 '슬럼프세대'의 차이

합리적 이성(理性)이 중심에 선 근대 이후 감성(感性)은 박대를 받았다. 이성적 차가움이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비인간적 참화의 주범으로 몰릴 경우 감성에게 간혹 호의가 베풀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감성은 무질서하고 불명료한 것으로 치부돼 왔다.

▽개성-감성 톡톡 튀는 젊은층

감성에 대한 이런 박대의 부당성을 지적한 이론적 분과 중 하나가 미학(美學)이다. 바움가르텐이 감성적 인식을 연구하는 미학이라는 학문의 이름을 주창했을 때, 그가 극복하려 한 것은 데카르트적 이성 중심주의였다. 크로체와 콜링우드가 질풍노도와 같은 낭만주의 예술을 옹호했을 때, 그들이 논증하려 한 바는 감성도 이성만큼이나 조화와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미학자들은 우리의 감성이 적절한 지도를 받아 적합한 형식으로 표현된다면 딱딱하고 추상적인 이성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구체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물론 그렇지 못할 경우 감성은 무질서와 비합리의 극단적 형태로 폭발되기도 한다.

최근 외국의 한 언론은 오늘날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슬럼프 세대(slump generation)라는 별칭을 붙이고 있다. 이른바 S세대의 등장이다.

일본의 S세대란 최대로 풍요롭게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어 경제적 불황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다시 한 번 기술을 증진시키고 땀을 흘려야 한다는 기성 세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S세대에게 그 소리는 일 벌레들의 변주로 들린다. S세대의 상당수는 가수나 미용사가 되는 것이 꿈이며, 물들인 머리와 현란한 복장 밖으로 개성적 감성을 톡톡 배출한다.

일본 기성 세대의 눈에는 감성적인 이들 S세대가 무질서하게 보일 것이다. 일본의 연령별 인구 분포는 노년층이 많은 ‘뒤집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이다. 이 ‘뒤집어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밑에서 지탱할 S세대는 예전 세대보다 질서를 더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필요가 과거의 역사를 미화하는 방식으로 충족될 수는 없다. 감성화된 젊은이들에게 미래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질서 있는 규율을 심어주는 일이 정신대 여인들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군국주의의 규율을 찬양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향수에 젖어 과거 미화-찬양

정신대 여인들의 이미지에 담긴 고통에 깊이 슬퍼하면서도 그런 고통의 역사적 원인을 명료하게 진단할 수 있게끔 교육이 이뤄질 때, 일본 청소년들의 감성은 미래 일본 사회를 질서 있고 조화롭게 꾸려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앞서 소개한 미학자들의 주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감성에는 양면이 있다. 양면 중 어느 면이 주류가 되느냐는 교육의 문제다. 역사적 슬픔과 그 슬픔의 원인을 가르치는 교과서, 그 교과서 없이는 미래가 어둡다.(홍익대 예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