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 리듬을 주는 것이 테마다. 테마란 성격이 비슷한 종목들을 한데 묶은 것이다. 어떤 근거로 무엇을 묶느냐에 따라 테마는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국내증시에 유행하는 사이비 테마의 현황과 투자자들의 대응요령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
(상) 말만 되면 무조건 "테마株"
(하) 약세장 버팀목-투기조장 '두얼굴'
북방외교가 한창 전개되던 1987년 말∼88년 초. 우리 증시에선 ‘만리장성 4인방’ 테마가 파죽지세의 상한가 행진을 벌였다.
선봉장은 대한알루미늄(올 3월 상장 폐지). ‘중국 정부가 관광명소인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거기에 필요한 알루미늄 새시를 전량 납품한다’는 게 재료였다. 그 다음 바통을 이은 게 검정고무신을 제조하던 태화(99년 5월 상장 폐지). 이유인즉 ‘이 공사에 동원되는 인부들이 신을 신발을 전량 납품하게 됐다’는 것. 곧이어 삼립식품의 주가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인부들의 간식으로 쓸 호빵을 대게 됐다’는 루머와 함께. 마침내 한독약품까지 이 기막힌 테마에 합류했다. 인부들이 호빵을 먹다가 체할 때 먹는 소화제로 이 회사의 ‘훼스탈’이 공급된다는 얘기였다.
믿어지지 않는 이 얘기는 우리 증시에서 떠도는 테마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소문이나 재료에 따라 한 종목이 뛸 때 그것을 놓친 사람들이 시장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다른 종목들을 모조리 뒤져내 줄줄이 ‘테마’라는 이름으로 엮는 것이다. 13년이 지난 요즘도 별로 다르지 않다.
“올 여름은 덥고 건조할 것이라는 예고다. 빙과 음료 맥주 등에 대한 수요가 늘 전망이다. 에어컨, 선풍기 제조업체들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병충해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농약 제조업체들의 매출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한 대형증권사가 25일 데일리에 실은 분석의 요점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른바 ‘폭염 수혜주’를 잡으라는 권유다. 작년 3∼6월에 해당업체들의 주가가 기온 상승과 더불어 상승세를 보였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청량음료 매출이 겨울보다 여름에 더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올 여름 매출이 지난해나 지지난해 여름의 매출에 비해 얼마나 더 늘 것인지’이다. 아울러 ‘작년 3∼6월에 전체 증시는 상승세였는지 하락세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현대증권 오성진 스트래티지스트는 “진정한 테마는 꾸준한 매출 증가를 가져와 적정주가의 밑바탕에 있는 기업의 본질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재료로 기본적으로 장기투자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잣대를 적용하면 작년 한때 증시를 달궜던 ‘구제역 수혜 테마’도 함량 미달이다. 이 테마의 선두 주자로 거명된 하림은 구제역이 한창이던 작년 3, 4월의 매출증가율이 예년에 못 미쳤다 마니커는 오히려 매출이 감소했다(표 참조). 하림은 올 1·4분기에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하림의 관계자는 “구제역과 광우병에 따른 대체수요로 매출량이 늘어난 효과보다는 2월의 폭설로 충청 경기 강원지방 영세사업자들이 기르던 닭이 대량 폐사해 단가가 상승한 것이 더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구제역이나 광우병 테마와 달리 아예 기업실적에 연결조차 안 되는 한심한 사이비 테마들도 부지기수다. 남북한 당사자들이 만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꿈틀거리는 ‘대북 교류 수혜주’가 대표적이다. 한 증권사 테마 담당자는 “어느 업체가 북한에서 어떤 사업을 벌일지가 밑그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각 증권사가 무작위로 몇몇 업체를 수혜주로 찍는다. 따지고 보면 현재로선 국내증시의 모든 업체들이 대북 수혜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증권정보사이트는 ‘청개구리주’까지 거론한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주식들을 묶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묶여지기만 하면 테마’라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모닝스타코리아의 정병선 대표는 “테마는 기업의 내재가치보다는 일시적인 유행과 분위기가 주가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장기투자보다는 투기가 판치는 시장에서 성행한다”면서 “사이비 테마로 뜬 주가는 머지않아 아무런 이유 없이 원위치되므로 따라 들어가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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