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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동아사이언스]피카소 '게르니카'는 4차원?

입력 | 2001-04-25 18:29:00


오늘은 1937년 스페인 북부지방의 소도시인 게르니카에 나치 독일 공군기들이 3시간 동안 무려 32t의 폭탄을 퍼부은 날입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의 우익 쿠데타에 항거한 공화파 측에 가담해 이 같은 참변을 당했습니다.

5월 31일까지 계속된 폭격으로 게르니카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고 독일 공군기들은 피신하는 주민들까지 기관총으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있던 피카소는 조국에서 벌어진 학살행위를 고발하고자 2개월만에 ‘게르니카’를 그려 그 해 파리 국제 전시회에 공개했습니다. 게르니카는 그 후 학정에 대한 저항과 화해의 상징이 됐으며 침묵하던 세계의 지식인들이 직접 스페인으로 달려가 총을 들게 했습니다.

그림에는 말을 올라탄 사람 아래 여러 사람들이 짓밟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말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을 의미하며 말 위의 사람들은 프랑코 장군의 군부 쿠데타 세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 탄 사람은 한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한 눈은 옆을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 세계는 공습을 주도한 히틀러 정권만을 비난했습니다. 피카소는 이중적인 인물화를 통해 게르니카 공습이 실제로는 스페인 군부의 사주에 의한 것임을 웅변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피카소는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줄 때 숨겨진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피카소는 여러 각도에서 본 사물을 모두 모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피카소의 입체화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부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3차원의 공간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음으로써 4차원을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이러한 종합적 입체화의 방법을 정립한 뒤 “드디어 우리는 완전한 형태를 그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게르니카는 “스페인에 민주화가 이룩됐을 때 스페인에 돌려줘라”는 유언에 따라 피카소가 죽은 지 6년 뒤인 1981년 9월 10일 마침내 스페인으로 돌아갔습니다.

puse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