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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비리수사]박원사 잠옷바람에 맛사지하다 검거

입력 | 2001-04-25 18:41:00


“박노항.” “예.”

비록 탈영병이지만 아직은 현역군인의 신분임을 잊지 않았던 탓일까.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에 은신해있던 ‘희대의 도망자’ 박노항(朴魯恒·50)원사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반사적으로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원기왕성하게 대답했다. 1000일이 넘는 ‘도피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 무장한 30여명의 수사관에게 둘러싸인 현실에 압도당한 듯 박원사는 아무런 저항없이 체포에 응했다. 진한 회색 잠옷 차림에 마사지용 모자를 쓰고 얼굴에 ‘머드팩’을 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검거 당시 얼굴 마사지를 하면서 ‘피부관리’에 신경을 쓴 점에 대해 일부에서는 박원사가 여장(女裝)으로 추적망을 따돌려온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양볼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현상수배 전단의 얼굴과는 달리 반백으로 변한 머리칼과 수척한 얼굴, 덥수룩한 장발에서는 오랜 도피생활의 불안감이 묻어났다.

좀체로 꼬리가 잡히지 않았던 박원사의 행적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15일 박원사의 형 노득씨(63)와 누나 복순씨(57)간의 전화통화 내용을 감청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지난해 2월부터 1년이 넘게 이 아파트에서 지낸 탓에 이웃사람들에게 노출될 것을 우려한 복순씨는 박원사를 제3의 장소로 옮기기 위해 충남 서천에 있는 노득씨 집을 찾겠다는 내용이었다. 추적반은 충남 서천에서 서울로 되돌아간 복순씨가 즉시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로 향한 사실을 확인하고 박원사가 이 곳에 숨어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잡았다.

10여일간의 잠복을 통해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불이 꺼져있는데도 신문이 배달되고 가스가 사용되는 점으로 미뤄 은신처임을 확신한 검거반은 투신에 대비, 아파트 건물 아래에 그물망을 쳐놓고 이사용 사다리를 통해 아파트 베란다로 진입했다.

한편 국방부 검찰단에서 박원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자수해야 할지 죽어야 하는지 갈등이 많았다. 죽을 죄를 졌다”고 말했다. 도피행각을 도와준 비호세력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도피기간 중에 가족들의 도움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