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건모는 3집 음반 ‘잘못된 만남’이 250만장 이상 팔려 음반 판매 부문에서 한국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데뷔 초기는 초라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7집 앨범 작업에 한창인 그의 새 뮤직 비디오 작업을 위해 회의를 하면서 문득 9년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시기에 데뷔한 김원준이 수려한 외모를 앞세워 소녀 팬들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 김건모는 한가한 스케줄 덕분(?)에 밤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비애를 느껴야만 했다.
그는 당시 같은 소속사 출신이었던 신승훈이란 당대의 스타에 덤으로 얹혀서 겨우 TV에 얼굴을 비칠 수 있었다. TV에 얼굴을 내민 뒤에도 몇몇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왜소한 체격에 까무잡잡한 얼굴의 그를 출연시켜주는 TV 프로그램은 별로 없었다.
김건모의 매니저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MBC 에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차가운 문전박대에 이를 악물어야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노래가 슬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여자분장까지 해가며 대중의 관심을 붙잡아맨 스스로의 노력 끝에 그는 스타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체르니 40번까지 배운 피아노 실력을 갖춘 그는 서울예대에 진학한 뒤 재즈 피아노를 익히는 등 음악적 기초를 닦았다. 그가 10년 가까이 의연하게 음악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데는 그런 탄탄한 음악적 자신감 외에 특유의 친화력도 숨어있다.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그의 전화기는 쉴새 없이 울려댔다.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통해 아는 전화만 골라 받는데도 거의 10분에 한 통씩 전화가 왔고 사람 좋아하는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 통화 중 호칭은 ‘형님’ ‘누나’ ‘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애주가답게 전화를 끊을 때쯤이면 “언제 술 한잔하자”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는데 그 많은 사람과 일일이 술을 마시다 보면 언제 음악을 할지 걱정된다.
이날 회의에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코믹한 내용이었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이 애절한 발라드임에도 불구하고 몸까지 써가며 끊임없이 개그를 풀어놓는 그에게 요즘 뮤직 비디오의 캐스팅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건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수화기를 들더니 절친한 대학 후배인 신동엽과 안재욱에게 술을 사주겠다는 전화를 걸었다.
며칠 후 김건모의 뮤직비디오 출연자 명단에 안재욱의 이름이 올랐다. 같은 가수로 다른 가수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아마도 의리를 앞세운 김건모의 화려한 화술에 ‘무너진’ 것이 아닐까.
헐렁한 의상에 빨간 양말,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입심은 여전하고, 지난 번 앨범을 발표했을 때 방송심의에 걸리자 방송활동을 그만둘 정도로 대단한 고집과 음악에 대한 열정도 변함이 없다. 녹음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의욕에 가득찬 그가 왠지 이번에는 일을 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 영 찬(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