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가능성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지대하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지금까지의 노선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반면 김위원장은 한국 측의 약속위반, 배신 등을 이유로 정책노선의 수정 변경이 가능하다.
북한이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관련해 고려할 요인을 검토하는 것은 답방 가능성과 상봉 후에 발표될 공동선언의 내용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북한으로서는 다음 여건들이 충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김위원장 위상 제고에 신경▼
첫째, 통일문제에서 진전이 필요하다. 북한은 연방제를 향한 전진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연방정부 기구 설치에 대한 합의나 연합과 연방의 공통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연구 협의체를 가동하기로 합의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국내 진보와 보수의 갈등구도가 견제요소로 작용한다.
둘째, 김위원장의 통일 조선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어느 정도 제고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북한이 한국 내의 친북 및 대북 우호세력 규모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 수백만명이 연도에 나와 김위원장을 환영하는 장면을 상정할 수 있다면 김위원장과 북한 체제의 정통성 제고를 위해 무척 매력적일 것이다.
셋째, 북한은 경제 회생과 발전을 위해 한국이 보장하는 지원 종류와 규모에 주목할 것이다. 금강산식 사업의 지속, 공단 지원, 비료와 식량 지원, 인프라 정비 지원, 전력 지원 등의 요구가 관철되느냐를 주시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양해상황 등 외적 견제요소와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라는 내적 요인이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 약속의 준수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이 김대중 정권의 의지와 집행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문제다.
넷째, 한국 내 반북 보수세력을 약화시키며 한미간 모순을 격화시켜 반미운동을 확대시키는 등 통일전선전술상의 이득에 어느 정도 기여하겠느냐를 판단할 것이다. 방문시에 직면할 반대세력의 동향, 신변안전 문제 등도 검토 대상이 될 것이다. 남한 정부의 안정도, 대북정책 추세, 한미 공조관계, 차기 정권의 성격 등 한국 국내 사정도 면밀하게 분석할 것이다. 제일 효과적으로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답방카드를 현정권을 상대로 쓰느냐, 차기 정권용으로 남겨둘 것이냐도 고려할 것이다.
다섯째, 미 중 일 러 등 타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도 검토할 것이다. 전방위 외교나 국제기구 사업 등에 미치는 영향과 답방이 대미관계 개선이라는 최우선 순위 사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지도 생각해 볼 것이다.
요약하면 북한의 답방 결정에는 김대중 정부가 제공하는 정치적 경제적 ‘선물’의 크기가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한측에서 보면 가까운 장래에 서울 방문을 결단할 여건이나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내의 부정적 동향, 한국 정부의 자주성과 주체성 결여, 각종 약속 이행에 대한 회의 및 국제환경 변화는 북한의 신중한 결정을 요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의 고려 사항들이 북의 요구나 전제조건이 된다면 한국 정부는 방문 실현을 위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제공할 것인지를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김위원장의 방문 실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국민, 국가, 민족적 차원에서는 어떤 의미와 이익이 있는지 분명히 해 국민의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정상회담의 정례화와 화해 교류의 확대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상봉해도 일방적인 지원의 계기만 되고 평화정착, 평화공존, 군사적 긴장완화, 신뢰 구축 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면 국민의 양해를 얻기 곤란할 것이다.
▼국민 지지 바탕 '대가' 논의를▼
한국 정부는 김위원장의 답방을 갈망하며 모든 노력과 자원을 투입해서 실현시키겠다는 자세이다. 바람직한 것은 기존의 포용정책 기조를 현실주의적 사고와 정책으로 보완해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을 재정립하고 이를 제시해 북한이 응할 용의가 있을 때 언제든지 김위원장이 방문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진정한 화해, 공영,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에 의미 있는 진전을 가져올 답방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김영진(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일본 게이오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