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안 썸머’는 최근 상영작인 ‘선물’과 여러 모로 비교되는 영화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두 영화는 모두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을 만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그러나 ‘선물’이 ‘머리’로는 엉성하다고 비웃을지 몰라도 ‘감정’은 외면하기 어려운 종류의 영화라면, ‘인디안 썸머’는 머리로는 그럭저럭 용납할 수 있지만 절실함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로펌 변호사 서준하(박신양)는 남들이 꺼리는 국선 변호를 자처하고 양복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괴짜. 남편 살해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 이신영(이미연)의 항소심에서 국선 변호를 맡은 그는 이 사건에 몰두하다 신영에게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신영이 정말 남편을 죽였을까’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법정 공방과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 사이를 오가지만, 그 사이에서 제 길 찾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법정 공방을 간결하게 처리한 편집은 좋았으나 표현이 너무 밋밋한 멜로는 보는 이의 감정이입을 어렵게 만든다. 유난히 잦은 클로즈업 덕택에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준하가 신영에게 연민을 느끼는 건 알겠는데, 모든 걸 다 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랑은 언제 시작됐는지 아리송하다. 시종일관 따뜻한 색조와 예쁘고 낭만적인 세트 안에서 두 남녀가 나누는 애절한 대사는 머리에서 짜낸 관념으로 들릴 뿐 마음을 뒤흔들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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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멜로로 돌아온 박신양이 신영의 잠긴 문밖에서 우는 장면을 보면, 멜로영화에서 박신양만큼 절절하게 우는 남자배우도 드물다. 그러나 이 장면에 전제되어야 할 격정이 애매한 탓에 박신양의 눈물은 ‘편지’와 ‘약속’에서 보여주었던 멜로연기의 ‘맛뵈기’에 그치고 말았다.
멜로보다 오히려 눈길이 가는 대목은 신영의 완벽한 절망. 또 모든 것을 단념한 듯한 이미연의 표정과 말투는 초반의 코믹한 분위기를 일순 가라앉힐 정도로 스산하다.
그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찾아온 짧은 여름날을 뜻하는 제목(Indian Summer)처럼, 어긋난 시간에 불현듯 찾아온 사랑을 지속하려 애쓰기보다, 화석처럼 간직한 채 겨울로 걸어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그 때문일까. 영화 마지막, 닫히는 문 틈새로 준하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신영의 얼굴에 희미하게 떠오른 미소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아릿해지는 장면이다. 노효정 감독의 데뷔작. 5월5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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