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앉은 황소' 불굴의 인간혼
▷시팅불―인디언의 창과 방패
로버트 M 어틀리 지음 김옥수 옮김, 360쪽 1만2000원 두레
자신이 믿고 의지해온 전통적인 가치와 신념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를 강요하는 외부의 침입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과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디언 수우족 최고의 전투 추장이자 영적 지도자이며 인디언의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앉은 황소’(Sitting Bull·1831∼1890)의 삶은 이 문제에 대해 한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스탠리 베스탈의 ‘앉은 황소―수우족의 챔피언’이 앉은 황소의 일생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그린 책이라면, 미국 공원 관리국 수석 연구관이자 서부 개척사의 권위자인 로버트 M 어틀리가 쓴 이 책은 방대한 사료를 통해 앉은 황소의 삶을 당시 서부개척과 인디언 토벌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인디언 문화에 대한 무지로 엉터리 결론을 내렸던 기존의 전기와는 달리, 인디언의 관점에서 새롭게 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앉은 황소’의 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기를 천착해간 저자가 다다른 결론은 커스트 장군의 무자비한 살인자이고 백인들에게 최고의 공포 대상이었던 앉은 황소가 뜻밖에도 자신의 땅을 지키고, 백인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자신의 동족을 돌보고자 했던 한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지상과제는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백인들로부터 자신의 영토와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었는데 어틀리는 이를 ‘방패와 창’이라는 은유를 통해 설명한다.
‘앉은 황소’는 인디언과의 약속이라고는 하나도 지키지 않는 백인들을 욕망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백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백인과 평화조약을 맺고 그들이 주는 ‘선물’을 받으며 연명하느니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음을 택하겠다는 그의 말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의 표시이다.
방패와 창이 다른 부족과 백인들로부터 종족을 지키는 전사로서 그의 삶을 상징한다면, 용감함 인내심 관대함 지혜라는 라코다족의 4가지 덕목은 그의 내적 인간의 됨됨이가 어떠했음을 잘 보여준다. 전쟁에서의 용맹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내와 자식들을 살려주며, 무기가 없는 적에게 무기를 건넨 후에 싸움을 하는 모습 등에서 우리는 그의 관대함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앉은 황소’가 창과 방패로 동족을 지켜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지켜낸 것은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훨씬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불굴의 인간정신이었다.
노스 다코다주와 사우스 다코다주가 그의 시신을 놓고 싸움을 벌이며 서로 자기 주에 앉은 황소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진정한 인간이기를 꿈꾸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이다.
김 원 중(성균관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