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시인… 시적언어… 파리를 적시는 詩心
이브 본느후와 외 지음, 미셸 자레티 감수, PUF출판사
프랑스는 시(詩)가 안 팔리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프랑스에 시의 전통이 결여된 것은 아니다. 가까운 세기만 보아도 프랑스는 보들레르, 베를렌느, 랭보, 말라르메, 아폴리네르, 발레리와 같은 세계적 시인들을 낳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프랑스 시는 너무 철학적이 되면서 보통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는 평을 들어 왔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노래하기보다는 자기 개인에 갇혀 주관적 사상을 표현함으로써 난해함만 더할 뿐 공감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파리 지하철 역내와 전철 벽보에 시가 등장했다. 알려진 시인들의 시도 간혹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파리교통공사 시 콩쿠르에 당선된 아마추어 시인들의 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편의 시로 피곤한 파리 시민들의 일상을 달래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지난 3월23일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파리의 셍 라자르 기차역에서는 낯익은 예술가들이 시를 낭독하고 옛시인들의 시를 노래했다. 참가자들에게는 교통부에서 편찬한 ‘떠남, 여행 모음 시집’이 배포됐다. 라디오로도 중계된 이 행사는 며칠 후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질 ‘시인들의 봄’ 행사의 공식 개막식이었다.
‘시인들의 봄’은 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시의 중요성을 일깨우려는 목적으로 자크 랑 문교부 장관에 의해 1999년 창안되었다. 간이 시 시장(市場), 낭송회, 전시회, 강연회, 시 경연대회 등 전국적으로 약 8000 건이 넘는 다양한 행사로 일주일 동안 진행된 이 시의 축제는, 미래의 시인을 준비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지방의 한 단체인 ‘사랑 유머 시’ 협회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시를 장려하기 위해 그들이 지은 시로 상점의 유리창을 장식하기도 했다. 출판계에서도 기존 시인들의 작품은 물론 처녀 시집과 연구서들이 많이 선보였다. 이번에 나온 연구서들은 쟝 뤽 스타인메츠의 ‘시적 조직망’처럼 선후배 시인들 사이의 사상적 영향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시인들에 비해 현대시인들은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읽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 현대시의 이러한 흐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는 발레리 연구의 권위자인 미셸 자레티의 감수로 이브 본느후와, 필립 쟈코테, 쟝 스타로빈스키, 쟝 피에르 리샤르등 프랑스의 저명한 시인들과 연구가들이 참가한 ‘시의 사전, 보들레르부터 오늘까지’를 들 수 있다.
900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사전은 시인들에 대한 상세한 연구 외에도 시적 영상과 시적 언어, 서술, 목소리, 번역 등 시에 관한 모든 주제를 담았다. 아울러 시의 존재 이유, 본질, 형식을 검증함으로써 프랑스 시 연구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인들의 봄’이 프랑스 거리에 넘쳤듯이, 또 다시 시가 노래로 흐르는 날이 멀지 않을 것만 같다.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