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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황진이' 완벽 소화한 日교향악단

입력 | 2001-04-29 18:54:00


지난 16일 한국오페라단의 ‘황진이’ 공연이 열렸던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일본에서 NHK교향악단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도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석에 들어섰다.

‘일본 악단인데, 한국적 리듬과 분위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기녀들의 춤, 한량들의 어깨춤도 오케스트라가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격정의 순간마다 투명하게 뿜어져나오는 금관의 포르테(강주·强奏)는 놀라움을 안겨줬다.

“금관 악기가 파이프오르간처럼 울리더군요.” 작곡자인 이영조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만족을 표시했다.

지휘자 김정수씨(평택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공연이 끝난 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연습과정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파트별 악보를 일찌감치 도쿄필에 보내주었지요. 그거야 관행이니까. 그런데 며칠 지나자 도쿄필에서 질문서가 날아오더라구요. 이 부분의 선율이 긴데 어디서 숨을 끊으면 되느냐, 여기서 크레셴도(점점 크게)를 하면 다른 악기와 밸런스는 어떻게 처리하느냐 등등…. 문항이 130여가지나 되었죠. 회신을 정리해 보내주었더니 다시 수 십가지 질문이 날아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도쿄에 도착해보니 기술적인 부분의 연습은 끝나 있었어요. 제가 한 일은 관현악에 섬세한 색채를 불어넣는 ‘미세조정’이 전부였죠. 이렇게 편한 연습은 처음입니다.”

서구인들이 일본 문화상품을 대한 뒤 공통적으로 두 손 드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치밀하리만큼 정교한 ‘손질’과 ‘뒷마무리’다.

우리 눈으로 볼 때 스케일이 작거나 지나치게 미세한 부분에 매달리는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섬세함’에 많은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인들의 이런 정교함과 꼼꼼함이 선진국 일본을 낳았다는 분석도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정반대로 ‘대범한’ 부분이 너무 많다.

지금 도쿄의 공연장에는 일본이 월드컵을 맞아 세계인 앞에 내놓을 문화상품의 일정 등을 담은 목록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다.

반면 1년여를 남겨놓은 지금 우리는 월드컵 대비 문화상품으로 무엇을 준비 중인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것도 우리 특유의 ‘빨리빨리’와 ‘대범함’으로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