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의 성적은 ‘볼넷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 다시한번 입증됐다.
박찬호는 30일 LA다저스의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 선발등판 ‘3전4기’로 3승고지를 밟았다.
7이닝동안 25명의 타자를 맞아 119개의 공을 던진 박찬호는 2안타(솔로홈런 포함) 1볼넷 10탈삼진의 ‘위력투’로 1점만을 내주며 4-1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박찬호의 호투는 제구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전 경기까지 32와2/3이닝동안 볼넷 16개를 남발했다. 2아웃을 쉽게 잡아놓고도 볼넷으로 주자를 모아준 뒤 ‘큰 거 한방’을 맞고 무너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볼카운트가 2-3에 몰려도 낙차큰 커브와 아웃코스 꽉찬 빠른 직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삼진을 잡아냈다.
특히 어깨가 덜 달궈져 볼이 많았던 1회와 2회 수비를 무사히 넘긴것은 인상적이었다. 톱타자 글랜빌을 2-3 풀카운트에서 바깥쪽 변화구로 돌려세우고 1사후 3번타자 롤렌을 스트레이트 볼넷을 출루시켜 흔들릴수 있었으나 4번 바비 아브루를 볼카운트 1-3에서 중견수 플라이를 유도하는 노련함을 발휘했다. 2회에도 마찬가지. 선두타자 트래비스 리에게 2-3까지 몰렸으나 바깥쪽 꽉찬 변화구로 스탠딩삼진을 뽑아냈다. 6번타자 팻 버렐도 볼카운트 2-2에서 2개의 파울볼을 쳐내며 저항했으나 제7구를 바깥쪽 낙차큰 커브로 유인, 헛스윙을 유도했다. 7번타자 게리 버넷도 볼카운트 2-2에서 바깥쪽 빠른 직구로 헛방망이질을 유도했다. 이전경기에서 도망가는 피칭으로 쉽게 볼넷을 허용하던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찬호가 이날 절묘한 제구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타자들을 상대로 최고구속 156km의 직구와 날카로운 변화구를 앞세워 ‘칠테면 쳐봐라’는 식으로‘배짱투’를 했고 자신과의 ‘기싸움’에서 밀린 타자들을 철저하게 농락할 수 있었다. 특히 직구구사비율이 높았던 것이 주효했다. 박찬호는 이전경기까지 직구대:변화구 비율이 거의 1:1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119개의 공가운데 직구가 76개, 변화구가 43개로 거의 2:1로 던졌다. 도망가지 않고 정면승부했다는 얘기.
박찬호는 지난시즌에 볼넷 1개를 기록한 4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바 있다. 98년에도 볼넷1개를 기록한 4경기에서 3승무패(1경기 승패 관계 없었음)를 기록했다. 승패를 기록하지 못한 한경기도 7.2이닝동안 2실점으로 호투 한 바 있다.
이렇듯 박찬호는 볼넷만 줄이며 ‘언히터블’의 위력을 발휘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투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볼넷을 줄여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과제만 해결하면 된다. 그리고 볼넷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배짱투’를 하는 것 이다. 박찬호의 공은 그 누구도 쉽게 공력할 수 없는 위력을 가졌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다만 박찬호만이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박해식/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