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경제에 대한 비판이 최근 다시 고조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관치에 의한 개발경제 시스템의 한계를 극명하게 노정시켰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는 경제운영 시스템을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렇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누적돼온 막대한 부실을 신속하게 청소하는 구조조정을 부실한 시장메커니즘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정부는 구조조정에 관치를 동원했다.
▼구조조정도 임기응변 관치로▼
관치경제란 긍정적으로 보면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치를 동원한 구조조정은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임기응변의 정책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구조조정의 부진으로 인한 경제문제를 대증요법의 정책으로 접근하는 과거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다. 결국 관치는 시장실패를 교정하기보다는 악화시키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선 구조조정의 실패는 홍콩 사람들이 한국경제를 빗대어 말하는 강시경제(疆屍經濟)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상장회사의 4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상태에 있고, 이러한 부실기업의 차입금은 상장회사 차입금의 60%에 달한다. 그 결과로 주식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채권시장은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증권시장의 활성화에는 '고통스럽지만 꾸준한 구조조정의 추진'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연기금이나 보험회사를 동원하여 증시를 활성화한다는 실효성도 의심되고, 위험하기도 한 임기응변의 증시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
임기응변의 경제정책은 근본적으로는 정치실패에 연유한다. 정치실패는 관료들이 몇 년을 내다보기보다는 단지 몇 개월을 내다보고 정책을 수립하는 근시증(近視症)을 일으킨다. 한국 관료의 시계(視界)는 얼마나 짧은가. 장관의 평균 임기인 1년 정도가 관료시계의 한계일 것이다. 예컨대, 현재 한국의 재경부장관은 52년에 걸친 한국 행정부 역사에서 과거 재무부 시절부터 통산하면 45대째 장관이다. 반면에 미국의 현 재무장관은 212년의 미국 행정부 역사에서 72대 장관이다. 재무장관의 평균 재직기간이 미국은 3년인데 비해 한국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장관이 바뀌면 차관도 바뀌고 국장도 바뀐다. 그러니 고위 공직자의 시계가 1년을 넘을 수 없고, 그들을 보좌하는 중간 관료들도 근시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정책이 실패하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장관을 교체하곤 한다. 그러나 빈번한 장관의 교체가 정작 정책실패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의약분업 실패나 의료재정 파탄, 그리고 현대그룹 사태의 문제도 장기적 관점의 정책수립이 필수적인 정책분야에서 단기적인 시각으로 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에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이다. 관료의 시계가 고작 1년 정도라면 장기적인 관점이 중요한 정부정책은 부실해지기 마련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장관이나 차관을 언제라도 교체 가능한 소모품처럼 인식하는 정치적 후진성을 타파하는 것이다. 아울러 복잡다기한 현실의 정치과정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정책개발의 연구에 전념하는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본래 관료조직에는 국민과 언론은 물론 대통령, 국회, 각종 이익집단 등 서로 상충되는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주인(主人·principal) 이 다수이기 때문에 민원성 정책업무를 수행하는 관료는 장기적인 정책개발에 진력하기가 어렵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공무원 수를 줄인 결과, 인력 부족으로 중요한(?) 일이 쌓여 가는데도 보직이 없어 떠도는 이른 바 '인공위성 공무원'이 각 부처별로 수십 명씩이나 된다고 한다.
▼감축보다 우수공무원 활용을▼
정부는 공무원 수의 감축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수한 공무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사실 한국의 인구 대비 공무원 비율은 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실정이다. 이제 경제부처를 포함한 각 부처 안에 우수한 잉여인력을 모아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개발을 연구하고, 독립적으로 평가받는 별도의 부서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정치실패로 인한 경제관료와 경제정책의 근시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용(연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