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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LA리포트]캘리포니아 단전사태 그후

입력 | 2001-05-01 18:52:00


우리 사회의 ‘냄비 풍토’ 탓인지 미국 캘리포니아의 단전 사태는 초기의 대대적인 보도 이후 후속보도는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만능주의, 특히 김대중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계획과 관련해 그 함의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사태 전개를 계속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영화 추진 한국에 산 교훈▼

저는 2월 1일자 이 칼럼에서 캘리포니아의 단전 사태는 발전소를 팔아 버리고 시장원리에 의해 발전시장에서 전력을 구입하면 더 큰 이익을 낼 것이라고 오판한 전력회사들이 막대한 로비자금을 들여 1996년 전력자율화를 주도해 발전소를 팔고 전기를 전력시장에서 구입하기 시작하자 발전소 독점회사들이 가격을 조작함에 따라 적자가 누적돼 파산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는 많은 이곳 시민단체와 주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며 지난해 캘리포니아가 발전사에 지불한 전기료 평균이 무려 10배나 폭등했고 발전사들의 평균수익도 5배나 급증했다는 사실이 잘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전 민영화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캘리포니아에 급파한 조사단은 엉뚱하게도 단전사태가 전력을 반쪽만 자율화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즉 발전시장을 자율화하면서 소비자 전기료는 계속 규제함으로써 전력회사들이 도매가격 인상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해 재정난과 단전사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규제가 전혀 없는 완전자율시장은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율화가 실패하면 남아 있는 규제를 희생양으로 삼아 불완전한 자율화가 실패의 원인이라며 아전인수격으로 더 많은 자율화를 요구하는 시장 맹신론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조사단의 주장대로 캘리포니아주가 자율화 당시 소비자 전기료는 계속 규제하기로 한 것은 사실이며 소비자 요금도 자율화해 급등한 구입가격을 소비자에게 전가했더라면 단전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전기료를 몇 배나 올릴 바에는 무엇 때문에 자율화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즉 자율화의 목표는 경쟁을 통해 더 싼 값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었고 2002년까지 전기료를 20% 절약해 주겠다는 것이 자율화의 약속이었습니다. 나아가 소비자 요금도 자율화해 몇 배 올렸다면 단전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많은 빈곤층이 전기료 체납으로 인한 단전으로 캘리포니아의 무더위에도 에어컨조차 켜지 못해 생명을 잃었을 것이며 유수 기업들이 놀라 전기료가 싼 다른 주로 이주하는 대규모 기업 엑서도스가 생겨나 주경제는 엉망이 됐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기는 그것이 갖는 독특한 성격 때문에 경쟁과 시장원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미국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전기는 규제가 없는 시장경제였습니다. 그러자 소수 전력회사들이 독점력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전기료를 부과함으로써 국민의 고통은 물론 기업의 국제경쟁력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력의 국유화를 추진했고 놀란 전력사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생산에서부터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정부의 규제에 두는 타협안에 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추진했던 전력자율화가 파국만 부른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한국과 정반대로 캘리포니아주는 안정적인 전력을 보장하는 길은 단전 소동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로스앤젤레스처럼 전력을 공공 소유로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해 전력의 재규제를 넘어서 공공 소유화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캘리포니아주는 주예산을 투입해 주 소유의 발전소 설립에 나서는 한편 전력회사 소유의 송전 및 배전 설비들을 구입해 주 소유로 만들기 위해 3대 전력회사에 비상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송전 및 배전 시설을 주정부에 팔도록 압박해 최근 한 회사의 송배전 시설을 구입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주정부 전력 공공화에 안간힘▼

다만 문제는 다른 한 회사가 밥줄인 송배전 시설을 내놓지 않기 위해 법정관리와 비슷한 챕터11 파산선고를 전격적으로 신청한 것입니다. 이에 주정부는 이 회사가 파산 신청 하루 전 날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연봉을 올려줬다는 사실을 폭로해 여론전을 펴는 등 전력 공공화를 위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손호철(서강대 교수·현 미국 UCLA 교환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