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만큼은 ‘귀족교육’을 시키지 않고 평범하게 키우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조기교육 열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98년 여름. 외아들 준현이 18개월 됐을 때다. 80만원 가량 하는 값비싼 학습교구 한 뭉치를 들고 온 판매사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사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너무 비싸요. 영어세트는 나중에 사면 안되나요?”
“어머님도 참. 요즘은 아이들도 영어 못하면 ‘왕따’당해요. 눈 딱 감고 모두 장만하세요.”
“당장 가진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요?”
“카드로 결제하셔도 되고요. 돌반지도 받아요.”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학습교구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은 별로 없다. 4∼5세용이 가장 많지만 점점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극성 엄마들의 교육열을 업체의 상술이 부채질한다. 한 번이라도 상담을 받으면 ‘이걸 사지 않으면 내 아이는 바보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한솔교육, 웅진출판, 프뢰벨, 한국몬테소리, 한국오르다 등 학습교구 업체들은 불황을 모른다.
영유아 교구로는 인성 및 지능개발을 위한 통합교구, 한글·수학·영어전문 교구가 시판되고 있다. 대부분 세트로 판매된다. 원래는 엄마가 지도하도록 만들었지만 요즘은 방문교사가 월 3만∼4만원을 별도로 받고 집으로 찾아와 지도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비자인 엄마들의 가장 큰 불만은 역시 가격. 통합교구는 30만∼100만원대, 한글은 20만∼50만원대, 영어는 40만∼90만원대. 필요한 것만 골라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부담이 크다.
아들을 키우는 이지윤씨(경기 성남시 분당구)처럼 조금이라도 싸게 교구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판매에 나서는 학부모들도 있다. 일정기간 교육을 마치고 판매목표액(보통 100만원 이상)을 채우면 10∼15% 싼 직원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업체도 있기 때문. 하지만 집에서 살림하는 주부들이 판매목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가격 외에도 방문판매의 문제점이 있다. 판매사원의 설명만으로 교재를 선택하기에는 정보가 충분치 않다는 게 첫 번째. ‘마미네트(www.maminet.com)’ 등 아이 키우는 엄마를 위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다른 부모들의 조언을 받아보는 게 좋다.
판매사원이 “한꺼번에 사면 사은품을 준다”는 식으로 유혹해도 넘어가면 안된다.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4∼5세용 교구를 사줬다가 정작 지도학습이 필요한 시기에 판권이 다른 출판사로 넘어가 방문지도를 받을 수 없게 된 경우도 봤다.
물론 아이의 적성에 잘 맞는 교재를 골라 제대로 활용하면 학습교구는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교구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 열정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모두들 가끔씩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은영(서울 강남구 대치동·jun1224@hitel.net)
△한양대 생화학과 졸업. 아세아연학신학원 수료
△정보통신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남편과 외아들(준현 ·6)
△한때 국제울타리선교회 간사로 일하면서 회보도 만들었지만 준현이가 태어난 뒤 그만 뒀음. 아이가 크면 다시 선교, 장애아 교육활동을 벌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