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지방선거 재 보선 참패로 민심의 현주소를 확인한 여권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인식 하에 전열 재정비를 서두르고 있다. 여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같은 움직임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전열정비는 대선예비주자부터’〓민주당 김중권(金重權) 대표가 2일 당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대선주자’ 또는 ‘예비후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지금은 대선주자들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당의 경쟁력 제고가 더 시급하다”고 경고하자 여권 전체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김 대표가 일부 최고위원들의 ‘강연정치’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 처음은 아니나, 이번엔 그 강도가 달랐다.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선주자들의 행보 문제가 처리될 수 있도록 총재께 건의할 생각”이라는 김 대표의 얘기는 대선주자들의 개인주의적인 행동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김심(金心·김대통령의 의중)’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며 김 대표 발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는 달리 김 대표가 당 장악력을 강화하고 DJ의 재신임을 얻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관측도 없지 않았다.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에 대한 주문〓이런 가운데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가 최근 이 최고위원에게 강한 어조로 몇가지 조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연을 하되 ‘대권―당권 분리론’이나 ‘전후(戰後)세대 대통령론’ 같은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국정을 홍보하거나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리더십 부재를 비판하는 데 주안점을 두라고 조언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그렇게 해야 ‘이회창 대(對) 이인제’의 구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고, 김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권 인사들은 이 관계자가 이 최고위원을 여권의 차기후보로 상정하고 이같은 조언을 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유력한 주자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한 얘기였을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여권의 대선예비주자 관리는 4·26 재 보선을 전후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내년 지방선거 후보 조기가시화론과도 관계가 없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DJ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방선거 및 대선 분위기가 조기과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당장 내년 지방선거의 경우, 대선예비주자들을 내세워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의 단결론〓이날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의원들은 당정의 단합을 촉구하는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이치호(李致浩) 윤리위원장은 “현재의 국면을 풀기 위해서는 단결 밖에 없다”고 말했고, 임채정(林采正) 의원은 “당정이 일체감을 갖고 단합해서 통일된 국정전략을 수립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정이 단합해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도 위기관리〓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비서실 월례조회에서 “5월은 위기관리 능력의 시험대일 뿐만 아니라 올해 국정운영의 성패를 가늠할 중대한 시기”라며 비서실의 코디네이션십(조정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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