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화 국민 등 3개 정당이 연합한 현재의 통치집단이 4월 26일 실시된 기초단체장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다. 이런 선거 결과를 흔히 민심 이탈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급한 사람들은 이제 이 정권에 아무런 기대도 할 것이 없거니와 이 정권은 사실상 끝났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권 집단들의 생리적 반응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에 지나지 않으며, 또 민심이란 것도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라서 심하게 낙담할 것까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정치에 있어서 정치인들이 어떤 사태에 임하는 습관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는 것이 특징이다. 투표 결과를 보고 정책 방향을 바꾸거나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예방조치를 취하는 경우는 찾아 보기 어렵다. 갈 때까지 가면서 요행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정치의 이면에는 항상 무술(巫術)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권력행사 너무 자의적▼
무술에 기대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원시적 심성에서 나오는 것인데 먼 옛날에는 왕이 무술까지 겸하는 것으로 신통력을 보이면서 지배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신통력을 보여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계속 기적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권력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경제위기 극복선언이라든가 남북정상회담 쇼크라든가 또는 노벨 평화상 수상 등이 현대판 기적 창출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국민이 왜 이렇게 의욕을 잃고 정치를 증오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정책 노선을 왜 아무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그 이유는 오랜 '힘의 정치'에서 벗어나 보니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기대와는 달리 '술수 정치'였음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만사가 말과는 달리 거꾸로 가는 것을 체험하면서 정치를 희롱(戱弄)이라고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대통령의 권력 행사가 너무나 자의성(恣意性) 또는 재량성(裁量性)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대통령의 권력 행사를 그 아래에 있는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보강해 주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인도 인간인지라 인간이 갖는 욕망을 추구하는 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 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인도 자유를 향유하고 싶어한다는 데에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문제는 권력과의 관계에서 이 자유로운 욕망 추구가 어떻게 돼야 하는 것이냐에 있다. 남의 간섭을 받기 싫어한다면 적어도 정치에 있어서는 전권(全權)을 갖고 있는 상전(上典)에게 복종하기만 하면 그 문제는 해결된다. 그리고 나면 남는 것은 욕망인데 그 욕망은 복종에 의해 확보되는 것이다. 따라서 욕망만 충족된다면 상전이 누구이든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런 관계의 현실적 표현이 바로 3당 연합이란 것이다. 이 연합에 대해서는 이질적인 세력들의 모자이크라는 비판이 있어왔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이질적인 요소의 연합이 아니라 복종을 담보로 욕망을 추구하는 노예들이 만들어낸 동질적 합창이다. 이런 정치 행태를 놓고 보면, 욕망만 충족된다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인들 줄을 서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최고 권력자의 권력이 강할수록 이들에게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리 바탕 권력 개인화 추구▼
상전의 입장에서 보면, 아랫 사람들은 복종에서 벗어나 배반하는 것이 가장 못마땅한 일이 된다. 이것이 바로 한국정치에서 의리라는 덕목이 강조되는 이유다. 의리란 공적인 내용은 전혀 배제된 개인적인 관계에 해당하는 것이다. 권력의 개인화는 이렇게 이뤄지고 통치는 개인적인 관계의 함수 문제가 된다. 이런 관계에서 정치인들은 교양(?)을 함양하기 위하여 삼국지 나 대망 을 성경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면 된다. 술수 이외에 국민이 정치인들에게서 모범으로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노재봉(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