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서울 동숭동에서 공연된 연극 는 브로드웨이 코미디의 황제 닐 사이먼의 퓰리처상 수상작 을 우리 실정에 맞게 번안한 작품이다. 당시 이 연극은 관객 모두를 자지러지게 웃기다가 끝내는 눈물 콧물을 마구 쏟아내는 울음바다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을 원작삼아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영화는 아버지의 사업실패 때문에 졸지에 할머니댁에 기생하게 된 두 명의 장난꾸러기 형제 소년의 시각을 빌려 애증으로 뒤범벅이 된 한 가족사의 이면을 들춰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덜 떨어진 푼수 고모 벨라(머시디즈 루엘)다.
벨라 고모는 과년한 노처녀다. 그런데 사는 꼬락서니는 나이를 헛먹은 듯, 영락없는 코흘리개 소녀다. 조카들에게 막무가내의 애정을 퍼붓다가도 어느 순간 매몰차게 돌아서고, 큰 소리로 엉엉 울다가도 금세 헤헤거리며 아양을 떠는가 하면, 논리적인 사고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덜 떨어진 캐릭터다.
한 마디로 덩치만 컸지 지능은 형편없이 낮고 변덕이 죽 끓듯 하여 비위 맞추기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애물단지인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보다 깊은 곳에 숨어있다. 조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고마는 이 멍청이 벨라 고모가 없으면 캔디며 케익 따위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댁의 집안살림은 엉망이 되고 만다.
핵가족 분열이 보편화된 아파트 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독자들에게는 이런 캐릭터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종손 집안에서 자라난 4형제의 막내이자 허름한 동네 골목에서 불알친구들과 정신없이 뒹굴며 자라난 세대에게는 더 없이 친숙한 캐릭터가 바로 벨라 고모 같은 사람이다.
어느 동네, 어느 집안에나 이런 캐릭터가 있었다. 친척과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바보 병신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더 할 수 없이 곰살맞고 인정에 넘치는 성격으로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
은 벨라라는 캐릭터에 대한 집중분석이자 언제나 억눌려 살아왔던 그녀가 외치는 뒤늦은 자기해방 선언이다. 그녀의 힘겨운 자기주장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내포되어 있기 마련인 편애와 학대와 희생의 역사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나 무심하게 살아왔던 우리 모두의 가슴을 후벼판다.
우리는 벨라를 업신여기고 놀려대면서도 그녀의 도움으로 생의 한 시기를 버텨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그녀가 유년기에 성장을 멈춰버렸는지를 알지 못하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영화의 대단원에서 벨라는 절규한다. 너무도 상식적이어서 이제는 식상해졌으며 잊혀진 단어를 목놓아 외친다. 그것은 사랑이다. “엄마는 단 한번이라도 날 사랑해준 적이 있어? 오빠는 단 한번이라도 날 자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있어?!” 그런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머시디즈 루엘은 이 영화의 원작인 연극무대에서도 벨라 역을 맡아 토니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성격파 배우인데 과연 그 연기력을 보면 '악' 소리가 절로 난다.
부모 및 형제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는 가족이라면 오늘밤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앉아 이 영화를 함께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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