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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37년만의 거리 시위…박정희 기념관 반대

입력 | 2001-05-04 14:42:00


지난 박정희 정권 시절 '감옥 안의 정부(政府)'라 불리며 反유신민주화세력의 정신적 주춧돌 역할을 했던 시인 김지하(60·본명 김영일)가 오랜 침묵을 깨고 4일 서울시청앞에서 거리 시위를 가졌다.

실내 농성을 제외하면 김지하 시인이 옥외 시위에 나선 것은 1964년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 이후 37년 만의 일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지난 30일부터 벌이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 반대 1인 릴레이 시위의 마지막 주자로 참여한 김지하 시인은 시청앞에서 1시간여 동안 '박정희 기념관 반대'라는 띠를 두르고 '어두운 오욕의 역사'라는 피켓을 세워놓은 채 시위를 벌였다. 37년만에 옥외 시위에 나섰지만 개량한복 차림의 김시인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김시인은 "나는 박정희 정권을 반민주적이지만 경제 성장에 기여한 정권으로 생각해 왔다"면서 "하지만 IMF 같은 경제 위기가 결국 박정희 정권이 뿌려놓은 씨앗에서 비롯된 이상 더이상 경제적 치적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박 전대통령을 평가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김시인은 "작가회의와 이심전심이라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경제가 이렇게 된 마당에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국고를 지원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리 시위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김시인은 "내 부모를 고문했던 사람이라는 앙금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정희를 용서한 지 오래"라며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심정을 술회했다.

김시인은 1964년 시위때 처음 투옥된 이래 1980년까지 '오적' 필화사건 등으로 8년여간 옥고를 치렀다.

시위를 마친 후 김시인은 "시위하는 동안 무척 외로웠다. 그러나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시인은 또 지난 91년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잇따른 분신 와중에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는 요지의 글을 모일간지에 기고해 논쟁을 일으켰던 데 대해 가까운 시일 안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 현장에는 작가회의 현기영 이사장, 소설가 김성동, 김영현, 시인 이시영씨 등 작가회의 관련자 30여명이 나와 시위를 지켜봤다.

시위가 끝날 무렵에는 참석자 전원이 김시인을 중심으로 기념관 건립반대 구호를 외치고 김지하 시에 곡을 붙인 '타는 목마름으로'를 합창하기도 했다.

작가회의 김영현 자유실천위원장은 "문인들이 다시 현실 참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번 1인 시위는 상징적 의의가 크다"고 이번 시위를 평가했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