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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백승일 ‘백두봉’ 정복…4년7개월 설움 날려

입력 | 2001-05-04 18:33:00

백승일(오른쪽)이 백두급 결승에서 이태현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다.


너무 일찍 정상의 맛을 알아버린 ‘소년 장사’. 그리고 그 자만심 때문에 오히려 좌절과 시련을 겪어야 했던 ‘모래판의 풍운아’.

소년 장사의 티를 벗고 20대 중반의 청년이 된 백승일(25·LG투자증권)은 4일 거제장사대회 백두급 결승이 끝나는 순간 모래판에 벌렁 드러누워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감격에 젖은 LG 이준희 감독도 누워버린 백승일을 일으켜 세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함박 웃음과 박수로 축하를 전했다.

4년7개월 만에 차지한 눈물의 타이틀이었다.

거제체육관에서 열린 백두급 결승. 백승일은 예상을 뒤엎고 현 천하장사 이태현(25·현대중공업)을 3―2로 꺾고 꽃가마를 타는 감격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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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에서 권오식, 4강에서 김경수를 잇달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 백승일은 이태현을 맞아 첫 판과 둘째 판을 내리 잡치기로 따내며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그러나 이태현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뒷무릎치기로 한 판을 만회한 뒤 무승부에 이어 다시 밭다리를 시도하며 백승일을 밀어붙여 승부는 2―2. 연장전에서 이태현은 안다리 공격을 시도하며 파고들었으나 백승일이 몸을 뒤로 빼는 순간 이태현의 무릎이 모래판에 먼저 닿았다.

사실 백승일과 이태현은 ‘한솥밥’을 먹던 사이. 백승일은 1992년12월 청구 씨름단의 샅바를 맸고, 이태현도 이듬해 8월 청구에 입단하면서 씨름판에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1998년 청구가 해체되면서 이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이태현이 지난해 천하장사 타이틀을 따내는 등 ‘모래판의 지존’으로 군림하는 사이 백승일은 점차 잊혀진 선수가 됐다.

프로 데뷔 때만 해도 백승일은 프로입문 6개월 만에 천하장사에 올라 ‘천재 씨름꾼’으로 통했다. 1993년 백승일이 세운 ‘17세 천하장사’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 이후 천하장사 3회, 백두장사 4회의 성적을 남겼으나 1996년10월 대전대회에서 백두장사에 오른 이후로는 단 한번도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다.

해이해진 정신력, 이미 정상을 밟았다는 자만심 등으로 무너져 내리는 백승일을 다잡아줄 사람이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청구가 해체된 뒤 진로, 삼익, 신창 등의 팀을 전전했다. 백승일이 제 몫을 못하자 신창은 재계약을 포기해 결국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됐고 1년여의 공백 기간을 갖기도 했다.

사실상의 은퇴로 좌절한 백승일을 다시 모래판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LG 이준희 감독. 고향인 순천까지 찾아가 권유한 끝에 지난해 10월 LG에 입단한 백승일은 이후 마음을 고쳐 먹고 훈련에 돌입했다. 재기 6개월이 지난 이날 백승일은 기어이 ‘천재 장사’의 명성을 다시 한번 떨쳤다.

▽백두장사 순위〓①백승일(LG) ②이태현(현대) ③김경수(LG) ④김영현(LG) ⑤윤석찬(현대) ⑥김동욱(현대) ⑦권오식(현대) ⑧염원준(LG)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