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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칼럼]방귀대장 뿡뿡이를 위하여

입력 | 2001-05-04 18:55:00


지난 겨울 네 살배기 딸아이를 떼어놓고 영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눈물을 찔끔 짜대는 딸아이에게 텔레토비 인형을 사다주겠다고 약속을 했지요. 텔레토비란 말을 들은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나나! 나나!"를 외쳤습니다. 보라돌이나 뚜비보다 유독 나나를 좋아해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다 못해 화장실까지도 데리고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히드로 공항에 내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선배가 유학중인 캠브리지로 향했습니다. 열두 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에 지쳐 얼핏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푸른 언덕과 흰 양과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이 보였습니다.

텔레토비 나무였습니다. 뚜비와 뽀가 맴을 돌며 장난을 치던, 사방으로 가지가 쭈뼛쭈뼛 뻗은 나무들. 상상으로 만든 것이라고만 여겼지 그 나무가 정말 영국에 있으리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나무뿐이겠습니까? 텔레토비 동산에서 피어나는 꽃과 텔레토비들이 입은 옷과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까지, 영국의 정서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어린 시절 탐독한 만화 중에서 '바벨 2세'란 작품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학교를 빼먹을 정도였지요. 성경에서부터 인물과 배경을 따온 것도 놀랍고 지구의 운명을 걸고 벌어지는 사건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후 그 작품이 일본의 번역물이란 걸 알고 허탈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텔레토비에 열광하는 우리의 아이들 중에서도 그런 허탈감을 맛보지 말란 법은 없지요. 텔레토비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보편적이라는 관념을 갖게 될 테니까요.

나나의 인형을 사들고 귀국했습니다. 비록 영국 인형이지만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그것으로 대신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보름만에 만난 딸아이의 품에는 괴상하게 생긴 인형이 안겨 있었습니다. 나나를 내밀어도 딸아이는 그저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 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빨간 코에 툭 튀어나온 배. 두 볼에 찍힌 것은 연지일까? 도대체 저렇게 못난 인형을 왜 좋아하는 걸까?

방귀대장 뿡뿡이를 볼 때면 딸아이는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뿡뿡이가 방귀날리기를 하면 딸아이는 배꼽이 빠져라 웃음을 터뜨립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방귀로 바위를 날리며 힘자랑을 하는 방귀장이들의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우리도 일본이나 영국의 것이 아닌 우리만의 귀염둥이를 가지게 된 것이지요.

어린이날에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피카츄 인형을 선물하실 건가요? 아니면 '피터팬'이나 '인어공주' 같은 어린이 오페라를 보실 계획이신가요? 저는 딸아이에게 방귀대장 뿡뿡이 인형을 선물할 작정입니다. 그 동안 가지고 다니던 뿡뿡이 인형은 너무 작은 데다가 겨드랑이까지 뜯어졌거든요. 뿡뿡이 인형을 선물 받고 밝게 웃는 딸과 함께 신나게 놀겠습니다.

"준비됐나요?"

"네.네.네.네.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