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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나의 벗 '책'에 이 책을 바친다

입력 | 2001-05-04 19:03:00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이광주 지음/344쪽, 1만7000원/한길아트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의 치유장’이라고 이것을 표현했다. 오리엔트의 한 현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숙하다’고 이것의 미덕을 예찬했다. 시인 말라르메는 ‘세계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것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적당히 놓아두면 보기 아름답고, 더불어 시간을 보내기도 좋고, 나를 탓하는 법 없는 벗이며, 마음을 살찌워주는 것. 그것은 바로 ‘책’에 다름 아니다.

유럽 지성사 연구의 노대가인 저자는 온전히 ‘책에 바치는 책’으로 이 저서를 써내려 갔다. 책을 이루는 재료의 역사, 독서행위의 변천, 인쇄술, 베스트셀러의 역사…. 서구 역사 속에서 ‘책’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연구영역에 그는 지적 호기심의 확대경을 들이댄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책은 일일이 베껴 써야 하는 고된 작업의 소산이었다. ‘주여, 펜의 수고의 대가로 제게 예쁜 아가씨를 주소서.’ 사자생(寫字生)들이 때로 책 말미에 남겨놓곤 했던 장난 섞인 기원.

독서 또한 대중 앞에서 소리내며 낭송하는 성스럽고 공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12세기 초 ‘자기 사상’으로 책을 만드는 ‘저자’의 개념이 출현하면서 독서는 개인적 탐구라는 지적 행위로 성격이 변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 이후 독서가도 증가해 18세기 초 런던에는 매일 신문을 읽고 매달 새 책을 구입하는 ‘독서인’이 2000여명이었다.

책의 판매량은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미미해 괴테의 작품 판매량도 평균 1500부 정도에 불과했다. 17세기 이색 베스트셀러로 1만여 부가 팔린 버턴의 ‘우울증의 해부’는 오늘날 우리도 즐겨 쓰는 ‘멜랑콜리’의 개념을 서구사회에 깊이 각인시켰다.

그밖에 분서(焚書)와 책 탄압의 역사, 우표보다 작거나 인피(人皮)로 장정한 희귀본들…. ‘독서인’으로 자처할 수 없는 평범한 독서가의 눈길도 깊이 빨아들이는 흥미로운 사실(史實)들이 책장 곳곳을 수놓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만이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바로 저자가 책장 곳곳에서 못내 감추지 못하는 책에의 애정이며, 또한 때론 유장하면서 때로는 감칠맛 나는 아름다운 문장의 힘이다.

‘오랜 강단생활은 책을 가까이 하는 행운을 안겨주었지만, 어느덧 나는 책이라는 포도주를 감정인처럼 대하는 멋없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삶의 가을 뜰에서 바라건대 장밋빛, 엷은 상아빛이 뿜어대는 방향(芳香)에 흠뻑 취할 주객이 되어 나의 고전과 더불어 새로이 프루스트와 라블레, 미당의 작품들을 조석으로 가까이 하였으면 한다….’

‘책에 대한 책’인 만큼 끝으로 장정(裝幀)의 완성도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튼튼하게 묶였나, 지질은 훌륭한가, 화보는 요령 있게 삽입되었고 활자도 멋진가?

장정의 품격 만으로 서가의 한가운데 꽂아두기에 손색이 없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