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기로는 노래방만한 곳이 없다. 젊은 친구들이 멜로디도 없는듯한 리듬을 중얼거리며 읊조리는 것을 보면 솔직히 ‘저걸 노래라고 부르고 있나’라고 느껴질 때도 많다. 물론 80년대 발라드를 넘어서지 못하는 기자의 낡은 취향도 야유를 받곤 한다.
반면 클래식은 ‘유행이 없는 음악’으로 여겨진다. 휴전 직후 명동의 음악다방에서나 오늘날 최첨단의 CD점에서나 ‘베토벤 교향곡 5번’등 최고의 인기곡 목록은 엇비슷하니까.
클래식이라는 말 자체가 ‘고전(古典)’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니까, 고전의 목록이 변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 클래식도 유행을 탄다. 2차대전 이후의 흐름을 몇가지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전후 클래식 시장에 가장 먼저 큰 파장을 던진 것은 바로크음악의 부흥, 특히 비발디의 재발견이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졸업생들이 구성한 ‘이 무지치’가 잊혀져있던 협주곡집 ‘사계절’을 들고나오면서 일대 붐을 일으켰다. 오래 연주되지 않았던 비발디의 다른 협주곡들도 속속 표준 레퍼토리에 진입했다. ‘사계절’은 1960년대에 클래식 앨범 차트의 정상으로 올라섰다.
1960, 61년에는 말러가 화두였다. 대작곡가의 탄생 100주년과 사망 50주년이 한해 차이로 걸쳐 있었기 때문에 이 ‘세기말’의 작곡가는 2년 동안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와 직접 교유한 후배 지휘자 발터, 클렘페러가 꾸준히 그의 작품을 레퍼토리에 올려왔지만 말러 붐에 직접 불을 붙인 사람은 그의 정신적 상속자라고 주장하는 미국산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었다.
CD시대의 전성기인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화제를 불러일으킨 유행도 많았다. 때아니게 중세시절 수도사들이 불렀던 단선율(單線律)의 성가곡들이 수백만장씩 팔려나가더니, 고요한 선율을 수십 번씩 반복하는 구레츠키며 페르트의 ‘영적 미니멀리즘’음악들이 평범한 회사원과 주부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문화평론가들은 ‘시끄러운 세상에서 영적 고요함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게 여러 유행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한 것도 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20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무조(無調)음악을 비롯한 전위음악 대부분이 대중들에게 이해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쇤베르크를 필두로 19세기의 유산을 철저히 부숴나가고자 한 이 급진적 음악혁명가들의 작품은 단 한번도 표준 레퍼토리에 오르지 못했다. 다시 세기가 바뀐 오늘날 이들의 음악은 ‘진지한 음악을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한 범인’으로 종종 원망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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